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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탐방]캘리포니아 보디 유령 마을 – 서부 개척시대의 흔적 황금열풍과 함께 태어난 도시미국 캘리포니아 북동부, 시에라네바다 산맥 자락에 위치한 **보디(Bodie)**는 한때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했던 활기찬 광산 마을이었다. 19세기 후반, 서부 개척시대의 골드러시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 1859년 윌리엄 보디(William S. Bodey)가 금을 발견하면서 이 지역은 순식간에 인구와 자본이 몰려들던 황금의 도시로 떠올랐다.광산업이 번성하면서 도시는 확장되었고, 술집과 매춘굴, 오락실, 교회, 학교 등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보디는 번영과 동시에 혼돈을 품었다. 범죄, 살인, 화재, 파업이 일상이었으며, 당시를 살아간 이들은 “보디에 가는 사람들은 지옥으로 간다(Bodie, a hell on earth)”고 묘사할 정도였다.그러나 금맥은 오..
[해외탐방]뉴욕 러즈벨트섬 폐 병원 – 고립된 섬 속 유령 병동 동강난 도시의 조각, 러즈벨트섬의 이면맨해튼과 퀸스 사이, 이스트강 한복판에 위치한 러즈벨트섬(Roosevelt Island)은 겉보기에는 현대적인 아파트와 산책로가 어우러진 조용한 주거지다. 그러나 이 고립된 섬의 남단에는 뉴욕 시민들조차 잘 모르는 한 폐허가 조용히 서 있다. 바로 스몰팍 병원(Smallpox Hospital), 또는 공식 명칭인 루즈벨트 아일랜드 스몰팍 병원 유적이다.19세기 중반, 뉴욕시는 당시 만연하던 천연두(Smallpox) 환자들을 도시 외곽으로 격리하기 위해 이 섬에 병원을 세웠다. 1856년 완공된 이 병원은 미국 최초의 감염병 전문 격리 병원이자, 뉴욕 공공보건의 상징적인 유산이다. 도시에서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절박한 대응이, 바로 강을 사이..
[해외탐방]미국 디트로이트 폐공장 밀집지 – 산업화의 몰락 포디즘의 발상지, 무너진 산업 제국의 도시미국 미시간 주의 중심에 위치한 디트로이트는 한때 '모터 시티(Motor City)'라는 찬사를 받던 세계 최대의 자동차 산업 도시였다. 포드, GM, 크라이슬러 등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모두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었으며, 20세기 초중반 이 도시는 포디즘(Fordism), 즉 대량 생산·대량 소비 체제의 상징이었다. 당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조립라인에 배치되어 차량을 조립했고, 산업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기능했다.그러나 1970년대 이후 글로벌 경제의 구조 재편, 아시아 제조업의 부상, 석유 위기와 노사 갈등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자동차 산업은 급격한 쇠퇴를 맞이했다. 기업들은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자동화를 가속화했고, 디트로이트는 그와..
[해외탐방]체코 군사 요새 티레진 – 감시의 벽 너머로 오스트리아 제국의 전략적 요충지체코 북부의 작은 도시 티레진(Terezín)은 겉보기에 조용하고 평범한 시골 마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곳에는 18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요제프 2세가 건립한 거대한 군사 요새가 남아 있다. **티레진 요새(Fortress Terezín)**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방어기지로, 광범위한 방벽, 지하 터널, 외곽 보루, 그리고 주변을 감싸는 수로 시스템이 특징이다.이 요새는 1790년부터 군사 시설로서의 기능을 시작했으며, 이후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까지 유럽 군사사의 다양한 격변기마다 역할을 달리하며 유지되었다. 특히 강제 노역소, 무기 창고, 포로 수용소로 활용되면서 단순한 방어 요새가 아닌, 통제와 억압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인식되..
[해외탐방]벨기에 더블록 벨벳 극장 – 붉은 커튼 뒤의 정적 산업도시의 심장에 자리했던 문화공간벨기에 남부 왈롱(Wallonia) 지방의 오래된 산업도시, 리에주(Liège) 인근. 무채색의 철도와 공장이 늘어선 구역 한복판에 숨겨진 낯선 건축물이 하나 있다. 바로 ‘더블록 벨벳 극장(De Bloc Velvet Theatre)’, 한때 광산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문화적 쉼터였던 이 극장은 지금은 폐허 속 정적의 대명사가 되었다.이 극장은 1930년대 초반, 광산 산업이 정점을 찍던 시기에 세워졌으며, 예술 영화 상영, 연극 공연, 음악회가 활발히 열리던 시민극장이었다. 좌석은 600석 규모였고, 붉은 벨벳 커튼과 황동 난간, 대리석 계단은 당시 노동자 계층에게는 드물었던 호사스러운 문화 경험을 선사했다.그러나 1970년대 후반 산업 구조조정과 탄광 폐쇄의 물결 속에..
[해외탐방]폴란드 크르지나 정신병원 – 나치 유산의 음침한 자취 숲속에 가려진 병원의 과거폴란드 서부 루부쉬(Lubusz) 주의 깊은 숲속에 위치한 **크르지나 정신병원(Szpital Psychiatryczny w Krzyżanowie)**은 현재 지도에서도 쉽게 찾기 어려운 장소다. 19세기 말 독일령 시절에 지어진 이 병원은 원래 ‘요양을 위한 정원형 정신의료시설’로 설계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점령 하에서 어두운 역사의 중심지로 바뀌게 된다.이 병원은 당시 ‘T4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나치의 장애인 학살 계획에 따라 수천 명의 정신질환자들이 강제로 수용되고, 실험과 방치, 조직적인 살해의 장소가 되었다. 이는 단순한 전쟁 피해가 아닌 체계적인 국가폭력의 일환이었다. 특히 정신병원 내부에서 이뤄진 무기력한 환자에 대한 의학 실험, 절..
[해외탐방]루마니아 파라노마 정신병원 – 고딕의 저편에 남겨진 기록 고딕 건축과 폐허가 된 치료 공간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 브라쇼브에서 멀지 않은 산기슭의 어두운 숲 속. **파라노마 정신병원(Paranoma Psychiatric Hospital)**이라는 이름은 공식 지도에서도 찾기 어렵지만, 지역 사람들 사이에선 오랫동안 ‘버려진 고딕 병원’으로 불려왔다.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이 병원은 초창기에는 귀족 출신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요양 시설로, 고풍스러운 고딕 양식의 건축과 정돈된 정원 구조를 자랑했다.세로로 길게 늘어선 주 병동, 삼각 지붕 위에 세워진 시계탑,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등은 당시 유럽 정신의학이 ‘치유’와 ‘격리’를 병행하던 시기의 건축 철학을 잘 반영한다. 병원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치료소로도 사용되었으며, 냉전기..
[해외탐방]프랑스 오라두르 쉬르 글란 – 전쟁의 폐허가 된 마을 침묵 위에 남겨진 마을, 오라두르 쉬르 글란프랑스 중서부 리무쟁(Limousin) 지방의 한적한 들판에 자리한 작은 마을, 오라두르 쉬르 글란(Oradour-sur-Glane). 이곳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다. 오늘날까지도 전쟁의 상처를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기억을 위한 장소’다.1944년 6월 10일,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 나치 친위대(SS)는 이 마을에 진입해 민간인 642명을 학살했다. 이 참사는 당시에도 국제적 충격을 일으켰고, 전쟁 범죄 중에서도 특별히 잔혹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그 후 프랑스 정부는 폐허가 된 마을을 복구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오라두르는 프랑스 내 ‘기억의 장소(lieu de mémoire)’로, 물리적 유산을 통해 집단 기억을 계승하는 방식을 상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