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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해외탐방]미시간 이스트타운 학교 폐허 – 낙서로 남은 교육의 자취

 닫힌 교문, 열린 기억

미시간 북부, 이스트타운의 오래된 학교 하나가 지금은 폐허가 되어 바람만 드나드는 공간이 되었다. 도시가 외곽으로 팽창하면서 중심지에 남은 이 작은 학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그 누구도 새 주인을 자처하지 않은 채로 수십 년의 세월을 견뎌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마주한 건 삭막한 벽돌 외벽과 덜컥거리는 낡은 철문, 그리고 창문을 막아놓은 나무 판자들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 공간이 전하는 첫 감정은 침묵이었다. 마치 그 침묵이 모든 걸 설명해주려는 듯, 바람이 낡은 창살 사이로 스며드는 소리마저 지나간 시간을 속삭이는 듯했다.

입구에는 붕괴 위험 경고 팻말이 달려 있었고, 외벽 곳곳엔 낙서와 페인트 자국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반항의 흔적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말걸기처럼 느껴졌다. 오래전 학생들이 남긴 흔적, 혹은 이후 이곳을 스쳐간 누군가의 흔적. 과거와 현재가 이질적인 시간대 속에 겹쳐진 느낌이었다.

 

 복도 위, 나뒹구는 책장과 그림 조각

조심스레 열린 교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곧바로 길게 뻗은 복도가 시야를 잡아끈다. 천장은 내려앉았고, 전등은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바닥 위에는 노트 조각, 부서진 책상 다리, 때 묻은 교과서 뭉치가 흩어져 있다. 칠판은 이미 반쯤 떨어져 나갔고, 그 위엔 누군가가 얹어놓은 이름 모를 낙서들이 새겨져 있다. “J was here.” 같은 단어들, 혹은 아이가 그린 듯한 기린과 로켓의 그림.

그 낙서들은 이상하게도 정겹고 따뜻했다. 어쩌면 이 공간을 유일하게 사람의 체온으로 채워주는 잔여물일지도 모른다. 교실에 남겨진 교탁의 서랍을 열면, 사용하지 않은 분필 한 묶음과 시험지 뭉치가 나올 때도 있다. 분명 이 공간은 버려졌지만, 완전히 지워지진 않았다. 누구도 읽지 않는 시험지, 가르치지 않는 칠판, 듣지 않는 자리에 남겨진 글자들은 그 자체로 과거가 정지된 증거처럼 남아 있었다.

 

 

 

 시간은 건물보다 느리게 무너진다

이스트타운의 학교는 전형적인 1940~50년대 미국 공립학교 양식을 따르고 있었다. 붉은 벽돌, 기와 지붕, 작은 체육관, 나무 바닥의 교실. 시간이 멈춘 듯 보이는 이 학교에서, 진짜 무너지고 있었던 건 건물보다 기억의 자리였다. 아이들이 맨발로 체육관을 뛰놀던 소리,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복도 끝에서 수줍게 손을 흔들던 누군가의 얼굴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다만, 찢긴 커튼 사이로 흘러드는 빛이 한때의 정오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도시가 발전하면서 이 학교는 더 이상 위치상 유의미한 공간이 아니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곳을 새로운 용도로 재활용하지 않았다. 복원은커녕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겨울의 눈과 여름의 비를 고스란히 견디며 마침내 지금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건물은 무너졌고, 거기 함께 있던 시간도 조용히 함께 무너졌다.

 

 누구의 낙서였을까

학교 내부의 낙서는 오히려 다른 폐허들과는 다른 인상을 남긴다. 그것은 분노도, 절망도 아닌, 유쾌한 장난처럼 남겨진 흔적들이었다. 햇빛 아래 드러난 한 벽면에는 “Mr. Lewis is a robot”이라는 글씨가 아직도 남아 있다. 수학 선생이 로봇처럼 딱딱했다는 아이들의 장난일까. 다른 교실엔 “Class of 1989”라는 문구와 함께, 아이들의 이름과 별명이 동그라미로 묶여 있었다. 사라진 졸업 앨범 대신, 벽이 졸업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복도 끝 벽면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이곳은 우리의 두 번째 집이었어.”
그 문장이 왜 그토록 먹먹하게 느껴졌는지는 모른다. 누군가는 그냥 지나가듯 썼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 문장 하나가 이 공간의 분위기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폐허란 결국, 떠나간 사람의 흔적이 가장 강하게 남는 장소다. 그리고 그 흔적은 말보다 조용하게 남는다.

 

 잊힌 교육의 자리에서 얻은 것

이스트타운 학교는 더 이상 교육의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 서 있었던 짧은 시간 동안,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 남겨진 것을 해석하는 방식, 그리고 낡은 것들 속에서 조심스럽게 삶의 온도를 찾아내는 일. 이 모든 것이 이 폐허에서만 가능한 배움이었다.

교문을 나서면서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붕괴된 벽 너머, 교실 하나의 창문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 창문만은 유독 반듯했다. 교육은 멈췄지만, 기억은 남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낙서처럼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계속해서 읽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