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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해외탐방]루이지애나 식민지 폐저택 – 진흙 속 남부 고딕의 전설

 늪지 위의 백색 대저택, 그곳에 남은 시간의 잔향

루이지애나 주 바토루즈(Baton Rouge) 남쪽, 미시시피강 지류가 휘감는 진흙 늪지대 어귀에 **‘벨 드라므(Belle Drâme)’**라는 이름의 오래된 식민지 시대 대저택이 있다. 정식 지도에는 기록되지 않지만, 현지 탐방자들과 유령 전설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는 ‘남부 고딕 폐저택의 상징’으로 불릴 만큼 유명한 장소다.
1790년경, 프랑스계 이주민이 목화 농장 운영을 위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저택은, 백색 목재 외벽과 이오니아식 기둥, 2층 발코니와 검은 셔터창을 갖춘 전형적인 루이지애나 크레올 양식의 건축물이다.

세월이 흐르며 이곳은 주인을 수차례 바꾸었고, 남북전쟁 이후에는 일시적으로 병원 겸 피난소로 사용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1940년대 이후 경제 침체와 홍수 피해로 이 일대는 점차 황폐해졌고, 이 대저택은 수십 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버려지게 된다.
오늘날 폐허가 된 이 건물은, 흙먼지로 덮인 대리석 난간과 철제로 만들어진 굽은 계단, 무너진 서재와 침수된 지하 저장고 등 남부 고딕 특유의 음울한 미학을 간직한 채 조용히 늪 속에 가라앉아가고 있다.

[해외탐방]루이지애나 식민지 폐저택 – 진흙 속 남부 고딕의 전설

 

 

 

 고딕 문학이 현실이 된 장소

“이 집은 말한다. 죽은 자들의 숨결로.” 루이지애나 출신 작가들이 자주 언급하는 이 문구는 벨 드라므 저택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전설이다. 미국 문학에서 말하는 **‘남부 고딕(Southern Gothic)’**은 퇴락한 귀족 문화, 사회적 부패, 억압받은 기억, 기이한 인물과 장소가 어우러지는 미학을 뜻하는데, 이 저택은 실존 장소 중에서도 그 개념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실제로 폐허 탐방객들은 피아노 건반 위에 놓인 바랜 악보, 벽난로 위의 금이 간 초상화, 거미줄에 감긴 실내 샹들리에 등에서 묘한 공포감과 정적을 느낀다. 대체로 벨 드라므를 방문한 이들은 “시간이 멈췄다는 느낌” 또는 “이 집이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다.

특히 2층 복도 끝의 작은 방은 현지에서 **‘무명의 방(The Nameless Room)’**이라 불리며 미스터리의 핵심으로 꼽힌다. 내부에는 목재 의자 하나와 천장에서 떨어진 쇠사슬만 놓여 있으며, 뚜렷한 용도를 알 수 없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과거 노예 감금소 혹은 기도실이었다는 주장이 엇갈리며, 오랜 세월 동안 오컬트적 상징과 연결되어 전설처럼 소비되어 왔다.

 

 

 노예제도의 유산과 남부의 그림자

벨 드라므 저택은 단지 건축물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공포 분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 남부의 암울한 역사, 특히 노예제도와 농장 경제의 유산을 상징하는 장소로서 의미가 크다. 이 대저택의 뒷마당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노예 숙소의 폐허 흔적이 남아 있으며, 발굴된 기록 일부에서는 당시 고용된 흑인 노예 인원과 감시 목록, 징계 내역까지 확인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최근 몇 년 사이 일부 역사단체와 민권 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이곳을 ‘노예제 유산 보존지’로 등록하자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사유지인 이 저택의 소유권 문제와 보존비용, 안전 문제로 인해 공식적 움직임은 지지부진하다.

이처럼 벨 드라므는 남부 고딕의 정취 속에 감춰진 억압과 차별의 유산을 함께 품고 있다. 이를 단지 폐허의 아름다움으로 소비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지며, 도시 탐방자 역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장소에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연이 집어삼킨 인간의 흔적

현재 벨 드라므 저택을 찾는 이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의 압도적인 침식력이다. 100여 년 전 인간의 권위로 지어진 이 대저택은 이제 진흙, 넝쿨, 이끼, 수분, 바람에 의해 천천히 해체되는 중이다. 외벽은 습기에 녹아 검게 변색되었고, 천장은 무너져 내리며 마치 생명이 빠져나간 해골의 입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풍경은 폐허라는 개념을 단순히 ‘망가진 건축’이 아닌 ‘자연의 귀환’으로 보게 만든다. 벽돌과 나무, 유리는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사라진 공간을 자연은 가차없이 채워간다. 바닥에는 청개구리가 서식하고, 벽 틈에는 담쟁이덩굴이 들이닥쳤으며, 창문은 안개와 수증기로 가려져 있다.
그리하여 이 폐허는 도시의 이면이 아니라 자연과 문명의 경계선, 인간이 사라진 뒤 풍경이 회복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사진작가들과 영상 창작자들에게는 이러한 자연-건축 융합이 이례적인 폐허미의 진수로 여겨지고 있으며, 최근 다큐멘터리 플랫폼에서도 벨 드라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제작되고 있다.

 

 

 탐방 시 주의사항과 지역 사회의 반응

이 폐저택은 일반 공개된 관광지가 아니며, 위치 특성상 늪지대 진입과 폐건물 탐방 모두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비가 내린 직후에는 진입로가 진흙으로 덮여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고, 수풀이 우거져 길을 놓치기 쉽다. 내부는 구조물이 매우 불안정하여 붕괴 위험이 존재하고, 바닥은 습기로 인해 미끄럽다. 탐방 전 반드시 지역 가이드 동반이나 탐험 허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지역 사회의 반응도 다양하다. 일부 주민들은 이 저택이 ‘불운의 장소’라며 외지인의 방문을 꺼리는 분위기를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폐허를 보존하여 교육용 또는 역사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소규모 인문학 프로그램이나 고등학교 역사 수업에서 이 저택을 ‘고딕 문학 속 실제 공간’으로 소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따라서 이 장소를 찾는 폐허 탐방자는 단지 호기심이 아니라, 역사적 이해와 공간 존중의 태도를 지닌 채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벨 드라므는 그 자체로 경이롭고도 무거운 장소이며, 그 안에서 만나는 침묵은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