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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해외탐방]하와이 코코넛 아일랜드 유기 실험실 – 버려진 과학의 요새

 코코넛 아일랜드, 과학이 머물렀던 섬

하와이 오아후 섬 동쪽, 힐로만 근처에는 한때 첨단 해양생물 연구가 이루어졌던 작은 섬이 있다. ‘모쿠 오로에(Moku o Loʻe)’라는 전통 명칭을 가진 이 섬은, 대중에게는 ‘코코넛 아일랜드(Coconut Island)’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곳은 단순한 휴양지나 자연 보호구역이 아니라, 20세기 중반 이후로 과학적 탐구의 무대였던 장소다. 특히 1990년대까지 하와이 해양생물 연구소(HIMB)의 부속 실험실과 관측 시설이 집중적으로 운영되던 장소로, 해양학 및 생태학 분야 연구의 최전선이었다.

섬은 인공 교량으로 오아후 본섬과 연결되어 있어 물리적으로는 고립되지 않았지만,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적 특성상 독립적인 생태 실험이 가능했던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다양한 산호 군집, 해양 포유류, 연체동물 등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이 이곳에서 이루어졌고, 국제적인 연구 프로젝트의 기반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운영 예산 축소와 연구소 기능의 본섬 이전 등 여러 요인이 맞물리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부 시설은 방치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유기 실험실 역시 그 흔적 중 하나다.

 

[해외탐방]하와이 코코넛 아일랜드 유기 실험실 – 버려진 과학의 요새

 

 탐방 경로와 유기된 연구 시설

현재 코코넛 아일랜드의 대부분은 하와이대학교(University of Hawaii)가 소유하고 있지만, 일반 관광객의 접근은 매우 제한적이다. 섬 전체가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탐방을 위해서는 특별한 허가나 연구 목적으로의 사전 신청이 필요하다. 그러나 방치된 실험실 건물 일부는 육안으로 확인 가능할 정도로 외부에 노출되어 있으며, 위성 이미지나 현지 탐방 기록자들의 자료를 통해 그 외형과 내부 상태를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다.

유기된 실험실은 섬의 북동쪽 해안선과 가까운 지점에 위치하며, 콘크리트로 지어진 1~2층 규모의 구조물이다. 건물 외벽은 염분에 부식된 자국이 선명하고, 일부 창문은 깨져 있다. 건물 내부는 장비와 가구가 대부분 철거된 상태지만, 실험용 수조와 생물 보관을 위한 냉장설비의 잔해 등이 남아 있어 과거의 용도를 짐작하게 한다. 바닥에는 물때와 이끼가 슬어 있어 장시간 물이 유입되거나 습기가 유지되었음을 보여준다.

현지 탐방자들은 이곳에서 유리 실험기구의 파편, 해양 생물 샘플을 분류했던 라벨 종이, 연구진의 이름이 적힌 기록 파일 등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연구는 사라졌지만, 실험의 흔적은 여전히 섬에 남아 있었다.

 

[해외탐방]하와이 코코넛 아일랜드 유기 실험실 – 버려진 과학의 요새

 유기된 실험실이 품은 과학과 유산

코코넛 아일랜드 유기 실험실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방치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곳은 미서부 태평양 연안에서 진행된 생물 다양성 연구의 중요한 거점이었고, 희귀 산호 복원 실험이나 해양 산성화에 대한 장기 관측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던 공간이다. 오늘날 바다 환경 변화에 대한 기초자료로 활용되는 데이터들 중 상당수가 이곳에서 수집된 것이다.

게다가 1970년대 이후 이 섬에서 이루어진 일부 실험은 미국 정부의 군사 해양 생태계 조사를 뒷받침하는 데에도 사용되었고, 민간 환경단체와 공동 진행한 프로젝트도 존재한다. 그만큼 공공성과 학문적 기여도가 높았던 장소였으나, 예산 구조 변화와 물리적 접근성 문제, 관리 주체의 분산으로 인해 점차 잊히게 되었다.

과학은 흔히 '진보'라는 이름으로 현재와 미래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과학의 터전이었던 장소도 일종의 유산이며, 후속 연구의 뿌리가 된다. 버려진 실험실은 그래서 단순한 폐허가 아니라, 학문이 존재했던 ‘장소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해외탐방]하와이 코코넛 아일랜드 유기 실험실 – 버려진 과학의 요새

 탐방과 기록의 윤리

코코넛 아일랜드의 유기 실험실은 일반적인 도시 폐허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접근성의 어려움뿐 아니라, 여전히 일부 구역이 과학 연구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무단 탐방이나 접근은 생태계 교란 및 법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폐허 탐방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 기준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곳은 특히 신중함이 요구되는 대상이다.

다만 사진 자료나 과거 연구기록, 그리고 연구진 인터뷰 등을 통해 이 실험실의 존재와 기능, 그 잔재를 기록하는 일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하와이의 바다를 마주하며 오래도록 과학을 품었던 이 작은 섬이 이제는 탐험가와 기록자에게 또 다른 방식의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유기 실험실은 단순히 ‘버려진 장소’가 아닌, 한 시대의 과학이 남긴 지층이다. 실험은 끝났지만, 그 흔적은 지금도 바다와 섬, 그리고 기록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조용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