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시 폐허 탐방

[해외탐방]일본 군칸지마(군함도) – 산업의 유령섬

 탄광의 섬, 군함도로 불리다

나가사키현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작고 거대한 폐허, 하시마섬(端島)은 '군칸지마(軍艦島)'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군함도’란 별칭은 섬의 외형이 해상에서 바라볼 때 마치 전함(군함)처럼 보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실제로 일본 해군의 전함 '도사(土佐)'와 유사한 형태라는 평가를 받아, 이 명칭은 이후 공식적인 관광 자료에도 함께 쓰이게 되었다. 이 작은 인공 섬은 한때 일본 근대화의 상징이자,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인구밀도의 주거지가 존재했던 공간이기도 했다.

하시마섬의 역사는 1810년대부터 시작되며, 본격적인 탄광 개발은 메이지 시대 이후 미쓰비시 그룹이 이곳의 석탄 채굴 권리를 획득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일본의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던 시기, 이 섬은 막대한 양의 해저 석탄을 생산하며 국가 에너지 수요를 충당했다. 특히 20세기 중반에는 섬 전체에 고층 콘크리트 아파트와 학교, 병원, 영화관까지 들어서면서 하나의 완전한 폐쇄형 도시로 변모했다.

 

[해외탐방]일본 군칸지마(군함도) – 산업의 유령섬

 

 초고밀도 도시의 몰락

1959년, 하시마섬은 정점에 이르렀다. 섬의 면적은 단 6.3헥타르에 불과했지만, 이곳에 약 5,200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 기준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 밀도였으며, 섬 전체가 콘크리트 구조물로 가득 찬 하나의 거대한 단지였다. 실외 녹지는 거의 없었고, 건물 사이의 골목과 통로, 계단들은 거대한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다.

생활은 극도로 집약적이었고, 모든 시설은 위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교육기관부터 병원, 상점, 오락시설까지 섬 안에 없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은 석탄 중심의 에너지 구조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결과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일본은 석탄에서 석유 중심 에너지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하시마섬의 탄광은 경쟁력을 잃었다. 결국 1974년, 미쓰비시는 채굴을 전면 중단했고, 모든 주민이 한꺼번에 섬을 떠났다.

그 후 군함도는 완전히 폐쇄되었고, 수십 년 동안 방치되며 지금의 폐허로 남게 되었다.

 

 

 유령섬으로 변한 세계문화유산

방치된 콘크리트 구조물은 시간이 흐르며 하나둘씩 붕괴되기 시작했고, 바다에서 밀려오는 염분과 태풍, 지진으로 인한 손상도 누적되었다. 섬 전체는 점차 위험구역으로 분류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었으며, 과거의 산업 유산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남아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군함도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지기 시작했다.

2009년, 일본 정부는 일부 구간을 복구하고 관광객에게 제한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5년, 하시마섬은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의 상징적 장소로 평가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는 산업 유산으로는 드물게 폐허 상태 그대로 등재된 사례로, 가치를 인정받은 동시에 보존과 활용의 균형에 대한 국제적 논의도 촉진시켰다.

현재는 날씨가 좋은 날에 한해 일정 시간 동안의 가이드 투어가 허용되고 있으며, 안전상의 이유로 대부분의 건물 내부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해외탐방]일본 군칸지마(군함도) – 산업의 유령섬

 역사적 논란과 기억의 방식

군함도는 단순한 산업 유산이 아닌, 복합적인 역사성을 가진 장소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 강제 노동자들이 이 섬에서 가혹한 환경 속에서 탄광 작업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역사적 논란이 이어져 왔다. 유네스코 등재 당시에도 이 문제는 국제적 비판을 받았으며, 일본 정부는 관련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의 기억을 보존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후속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은 여전히 존재하며, 군함도를 단지 ‘근대화의 유산’으로만 소비할 수는 없다는 시각이 학계 및 시민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이 장소는 한 국가의 산업적 성공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어두운 역사까지 함께 담고 있어야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폐허는 종종 침묵하지만, 그 침묵 속에 무언가는 여전히 말하고 있다.

 

 

탐방 시 유의사항과 현재의 관리 상태

현재 하시마섬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나가사키항에서 출발하는 공식 투어 선박을 이용해야 한다. 섬 내부에는 안전하게 조성된 데크 구간만이 개방되어 있으며, 콘크리트 건물 내부로의 진입은 철저히 통제된다. 특히 낙석 위험이 높은 구역이나 오래된 구조물 근처는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폐허 탐방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곳은 "보는 폐허"에 가깝고, 물리적인 체험보다는 시각적·역사적 감상이 중심이 된다.

군함도는 여전히 태풍의 영향권에 있으며, 기상 악화 시 투어는 전면 취소된다. 사전 예약과 일정 확인이 필수이며, 현장에서는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제한된 구간을 이동하게 된다. 제한적이지만, 그 내부에 남겨진 벽과 창, 무너진 복도 사이의 정적은 방문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군함도는 사라진 산업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기억과 책임, 그리고 보존이라는 주제를 복합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드문 폐허다. 이제는 누구도 살지 않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공간이다. 특히 강제 징용으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곳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던, 조선인들의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