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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해외탐방]캄보디아 보크산 카지노 – 정글에 삼켜진 도박의 요새

 프랑스 식민시대의 유산, 해발 1,000미터 위의 폐허

캄보디아 남부, 해발 약 1,000미터 고지에 위치한 보크산(Bokor Mountain)은 한때 식민 지배의 상징이자 휴양지로 조성되었던 장소다. 이곳에 세워진 '보크 힐 스테이션(Bokor Hill Station)'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절인 1920년대 초에 건설된 복합 단지로, 식민 지배계층과 고위 관료들이 무더운 플놈펜을 떠나 시원한 고지에서 지내기 위해 만들었다. 그 중심에는 보크산 카지노와 고급 호텔이 있었다.

카지노 건물은 프랑스 르네상스 양식과 아르데코의 절충으로 지어졌고, 당시에는 유럽식 마감재와 수입 가구, 회전 계단 등 호화로운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해안선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자리 잡은 이 카지노는 캄포트만과 시아누크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자랑했다. 그러나 화려한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프랑스가 철수하고 내전이 시작되면서, 이 고지대 리조트는 급속히 버려지게 되었다.

[해외탐방]캄보디아 보크산 카지노 – 정글에 삼켜진 도박의 요새

2. 크메르 루즈와 내전의 흔적

1970년대 들어 캄보디아는 극심한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론 놀 정권과 크메르 루즈(Pol Pot) 사이의 내전이 격화되면서, 보크산 일대는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되었고, 폐허가 된 호텔과 카지노 건물은 일종의 군사 거점으로 이용되었다. 카지노의 외벽에는 총탄 자국과 박격포 흔적이 남았으며, 건물 내부는 진지와 사령부로 전용되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특히 크메르 루즈가 수도 프놈펜을 장악하기 전까지 이곳은 장기간 점령되었고, 이후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전투가 수차례 벌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카지노는 단순한 폐허를 넘어 내전의 상흔이 깃든 장소이기도 하다. 오늘날도 건물 안쪽 일부 벽면에서는 붉은 벽돌 사이로 포탄 파편이 박힌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무게 때문에 보크산 카지노는 ‘정글 속 유령 궁전’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오랫동안 접근하기 어려운 미지의 장소로 남아 있었다.

 

 

탐방의 대상이 된 폐허, 그리고 복합적인 변형

2000년대 이후, 캄보디아 정부는 보크산 일대를 관광 개발 대상으로 지정하며 접근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카지노 건물은 도시 탐방자(Urbexer)들과 사진가, 영화 제작자들에게 매력적인 피사체가 되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The Last Reel을 포함한 여러 로컬 영화들이 이곳에서 촬영되었고, 그로 인해 외부에도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건물은 여전히 상당 부분이 원형대로 남아 있으나, 구조 안전성은 떨어지는 상태다. 고풍스러운 콘크리트 외벽은 이끼로 뒤덮였고, 실내 바닥은 곳곳이 패여 있다. 옥상에서는 정글이 내려다보이는데, 이는 당대 식민 엘리트들이 누렸던 ‘고지대 권력’의 감각을 역설적으로 되새기게 만든다. 다만 최근 몇 년 사이 일부 공간은 복구 및 리모델링이 진행되어, 건물의 일부가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었다는 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식민과 폐허, 그리고 재개발의 경계

보크산 카지노는 단순한 폐건물이 아니다. 이 장소는 20세기 초 프랑스 제국주의의 흔적이며, 동시에 캄보디아 내전의 한복판을 거쳐간 공간이다. 더욱 복잡한 점은 이 유산이 지금은 다시 '관광 자산'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보크산 정상 인근에는 대형 카지노 호텔과 복합 리조트가 새롭게 건설되었고, 이전 폐허는 일정 부분 정비되거나 철거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진짜 유령 카지노’를 보려는 탐방객들과 현대식 리조트를 찾는 일반 관광객 사이의 괴리도 커졌다. 한편에서는 이 폐허를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으며, 다른 쪽에서는 관광 수익과 지역 개발의 현실을 우선시한다. 이러한 양면성은 아시아 각지에서 발견되는 폐허 관광지의 공통된 딜레마이기도 하다.

폐허는 무너지는 동시에, 무언가 새롭게 세워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것이 기억의 장소인지, 상업의 무대인지는 접근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해외탐방]캄보디아 보크산 카지노 – 정글에 삼켜진 도박의 요새

 현장 방문 시 주의사항과 접근법

보크산 카지노는 현재 비교적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으나, 고산 지대인 만큼 도로 상황이 일정치 않고, 급변하는 날씨로 인해 탐방 시에는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안개가 자주 끼며 시야 확보가 어려운 경우가 많고, 건물 내부의 바닥이나 계단이 일부 붕괴되어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이동해야 한다.

공식 가이드 투어는 없지만, 일부 지역 안내인이 현장 해설을 제공하거나 임시적으로 안내하는 경우도 있다. 건물 외벽에 낙서를 남기거나 쓰레기를 투기하는 행동은 금지되어 있으며, 일부 구간은 로프나 경고문으로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사진 촬영이나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이곳을 찾는 이들도 점점 늘고 있지만, 폐허를 기록하는 일은 그 자체로도 일종의 문화적 책임을 동반한다. 남겨진 건물과 벽돌, 잔해는 단지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잊는지를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