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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해외탐방]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폐우주기지 – 구소련 우주 유산

과거의 영광이 잠든 우주기지

카자흐스탄 사막 한가운데, 수평선 너머로 드문드문 보이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바람에 사라진 먼지와 함께 드러난다. 이곳은 바로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되고, 인간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날아올랐던 역사적인 장소다. 한때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이 소련의 우주 발사 기지는 냉전이 끝나고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점점 그 위상을 잃어갔다. 그중 일부 지역은 현재 사용 중이나, 많은 시설들이 방치되며 사실상 폐허화된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 거대한 유적은 단순한 과학의 흔적을 넘어, 당시 국가 체제와 우주개발 경쟁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이곳은 역사와 야망이 퇴적된 콘크리트와 철골의 도시로, 인적 드문 사막의 풍경과 하나가 되고 있다.

[해외탐방]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폐우주기지 – 구소련 우주 유산

버려진 격납고와 로켓의 잔재

바이코누르 기지에서 가장 상징적인 폐허 중 하나는 로켓 조립 격납고다. 현재 비활성화된 이 대형 건물은 붕괴의 위기를 가까스로 피한 채, 내부를 채운 녹슨 철재 구조물과 바닥에 널브러진 부품들만이 이곳의 과거를 말해준다. 과거 부란 우주왕복선 프로젝트에 사용되던 격납고는 지금도 버려진 부란 호의 모형이 내부에 방치된 채 남아 있다. 태양빛이 구멍 난 지붕 틈으로 들어오면, 거대한 그림자가 격납고 내부를 유령처럼 드리운다.

이 구조물들은 구조적으로는 아직 서 있으나, 수십 년 동안 유지·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아 이미 내부는 위험한 수준이다. 계단은 녹슬어 부서져 가고, 천장은 누수로 얼룩져 있으며, 몇몇 구역은 접근 자체가 차단돼 있다. 그러나 소수의 도시 폐허 탐험가들이 이 공간을 찾는 이유는, 무너져가는 기술의 흔적 속에서 시간의 층위를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 기술의 종말, 그 상징성

바이코누르 폐기지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상징성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를 바라보게 된 그 시작점이자, 동시에 국가주의적 기술 경쟁의 종착지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기술은 진보했지만, 그 토대를 이루었던 많은 시스템은 붕괴하고, 새로운 흐름으로 대체되었다. 그런 점에서 바이코누르의 폐허는 단순한 건축적 잔재가 아닌, 체제와 사상의 전환이 물리적으로 투영된 장소다.

여전히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의 일부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협약 하에 운영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수많은 창고, 조립라인, 제어실 등은 그대로 남겨져 있다. 이 버려진 공간들 속에 남아 있는 컴퓨터 패널, 기계 계기판, 손글씨가 남겨진 도면들은 마치 시간의 보관소처럼 방문자를 맞이한다.

[해외탐방]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폐우주기지 – 구소련 우주 유산

외부 탐사와 접근의 현실

이 장소는 민간인의 일반적인 접근이 불가능한 구역으로 분류된다. 러시아의 통제 하에 있으며, 법적 허가 없이 내부에 진입할 경우 외교적 문제로 번질 수 있다. 그러나 수년간 일부 언론 사진, 다큐멘터리 제작팀, 그리고 제한된 탐험가들의 방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다. 그들이 남긴 기록 속에서 우리는 무너진 벽, 조용히 방치된 로켓 본체, 철문 너머의 어둠 등을 볼 수 있다.

기지 외곽은 카자흐스탄의 거친 기후 속에서 점차 침식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사막화로 인해 본래의 경계를 식별하기 어려운 상태다. 과거의 영광은 흙먼지와 함께 묻혀가고 있지만, 여전히 바이코누르의 이름은 우주 개발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

 

 

기억과 기록, 그리고 경계

바이코누르 폐우주기지의 존재는 도시 탐방이라는 영역을 넘어서서 기술사와 정치사의 교차점에 서 있는 문화적 유산이다. 냉전이라는 시대 배경 속에서 탄생하고 사라진 이 공간은, 마치 살아 있는 다큐멘터리처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접근성과 위치, 법적 제한은 이 공간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경계 지대로 만들어 놓는다.

도시 폐허 탐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록이다. 무단 침입이 아닌 합법적 채널을 통한 정보 수집과 영상 촬영,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고려가 선행되어야 한다. 바이코누르처럼 폐허 상태에 놓인 우주 기지는 보기 드문 사례이기에, 이곳에 대한 기록은 장기적으로 역사적 보존의 가치를 지닌다. 폐허는 단순히 무너진 구조물이 아닌, 인류의 야망이 남긴 조용한 회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