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해안에 나타난 미래형 폐허
대만 타이난시 근교의 해안선 따라가다 보면, 마치 외계 문명이 불시착한 듯한 기묘한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동그란 창문과 곡선의 구조물,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흰색 돔형 건물이 열을 지어 늘어서 있다. 이는 한때 ‘사지첸 UFO 하우스’라 불리던 사지첸 유령 리조트의 흔적이다. 대만 관광 붐의 초창기에 미래형 레저 단지로 기획되었지만, 완공조차 되지 못한 채 공사 중단과 방치로 이어졌고, 이후 도시 폐허 탐방(Urbex) 마니아들에게는 ‘대만의 기형 건축’으로 불리며 전설이 되었다.
사지첸(San-Zhi, 三芝)은 타이완 북부 신베이시 해안에 위치한 조용한 어촌 마을이다. 이 일대는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서 멀지 않아 주말 휴양지로 개발되기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1978년경 정부 주도로 미래형 해양 리조트 단지 조성이 시작되었다. 프로젝트의 공식 명칭은 ‘사지 UFO 리조트(三芝飛碟屋)’였고, 미국의 미래 건축 양식에서 영향을 받은 ‘프루타 하우스(Futuro House)’ 모델을 기반으로 건축되었다.
프루타 하우스, 그리고 부유층을 위한 미래 도시
프루타 하우스는 1960년대 핀란드 건축가 마티 수로넨(Matti Suuronen)이 설계한 원형 조립식 주택이다. 주로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었으며, 당시엔 우주 탐사 시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사지첸 개발자는 이 형태를 대만 해변에 재현하고자 했고, 원형 혹은 타원형 구조물을 복층으로 이어 붙여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할 법한 리조트 단지를 계획했다. 당시 설계안은 바다를 향해 넓은 창이 설치되고, 각 건물은 개인 수영장, 헬리패드, 고급 클럽하우스 등을 갖출 예정이었다.
이 개발은 당시 신흥 중산층 및 외국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분양형 고급 주택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공사 중 사고가 빈번히 발생했고, 몇몇 노동자 사망 사고 이후 이 일대에 대한 ‘저주’ 또는 ‘불길한 땅’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1980년대 초반에는 대만 경제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고, 개발사의 재정 또한 악화되면서 프로젝트는 전면 중단된다. 완공되지 않은 구조물만 해변을 따라 방치된 채, 아무도 살지 않는 미래 도시가 되어버렸다.
기형 건축물의 방치와 탐방 열풍
사지첸 UFO 리조트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건 2000년대 초반부터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블로그에서 이 기괴한 건축물에 대한 사진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외국인 관광객과 도시 탐험가들의 입소문을 타며 비공식 명소로 떠올랐다. 낡은 구조물 위에 덩굴이 엉켜 있고, 바닷바람에 부식된 외벽은 황량함을 극대화했다. 해질녘에는 유령이 배회할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고, 밤에는 구조물 내부에서 바람이 공명하는 소리가 들려 탐방객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당시 현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입구에 아무런 안내판이 없다는 점에 놀랐고, 건물 내부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쓰레기 하나 없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고 전했다. 단, 노후 구조물인 만큼 붕괴 위험이 크고, 바닥이 내려앉은 곳이나 날카로운 파편이 흩어진 구간도 많아 출입 자체가 매우 위험했다. 특히 일부 UFO 하우스는 기초공사가 부실해 비바람에 기울어져 있었으며, 안전펜스나 경고 표식조차 없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오히려 미스터리한 매력으로 작용했다. 일본, 홍콩, 유럽의 서브컬처 팬덤 사이에서는 ‘대만판 사일런트 힐’이라는 별칭까지 붙으며 사진집과 영상물이 제작되었다. 일부 영상은 공포영화처럼 편집되어, 실제보다 더욱 신비롭고 기묘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철거와 기록의 경계선
사지첸 리조트는 약 30년간 방치된 뒤, 결국 2008년부터 순차적으로 철거가 시작됐다. 당시 신베이시 지방정부는 안전상의 이유와 재개발 필요성을 들어 해당 부지의 구조물을 모두 철거하고, 공공 해안 공원으로 탈바꿈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2010년경 대부분의 UFO 하우스가 철거되었고, 현재는 일부 기초 구조물과 콘크리트 기반만이 해변 주변에 남아 있는 상태다.
이로써 사지첸은 물리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전 세계 도시 폐허 아카이브에는 여전히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 온라인 이미지 아카이브와 영상 채널, 논문 및 디자인 사례집에서는 ‘미래 건축이 어떻게 실패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사지첸을 인용한다. 특히 도시에 대한 공상적 비전과 그 이면의 자본 논리, 사회적 반응 등이 총체적으로 얽힌 사례라는 점에서 학술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사라진 건축이 남긴 교훈
사지첸 UFO 리조트는 단순한 건축 실패 사례가 아니다. 이곳은 아시아 도시가 미래와 개발이라는 키워드 아래 어떤 시도를 했고, 어떻게 실패했으며, 그 폐허가 어떻게 문화적 재조명을 받았는지를 보여주는 흔치 않은 장소다. 건축과 사회적 서사가 결합된 도시 폐허로서, 사지첸은 ‘미래’라는 단어가 건축적 실체로 구현될 때 어떤 위험성과 기대가 함께 따르는지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구조물들이 실제로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손이 닿기 전에 방치되었고, 오히려 사람이 떠난 후에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는 도시 폐허가 단순히 사용 후 남겨진 공간이 아니라, 때로는 사용조차 되지 못한 채 문화적 유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현재 사지첸 부지는 공식적인 공원으로 재정비되었지만, 그 자리에 남은 일부 구조물의 기초, 바닥 철근 자국, 부식된 기둥 파편은 여전히 과거의 흔적을 증명하고 있다. 사라진 리조트는 사지첸이라는 지역 명칭보다 더 널리 알려져, 지금도 ‘기형 건축의 종착지’라는 별명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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