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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탐방]하와이 코코넛 아일랜드 유기 실험실 – 버려진 과학의 요새 코코넛 아일랜드, 과학이 머물렀던 섬하와이 오아후 섬 동쪽, 힐로만 근처에는 한때 첨단 해양생물 연구가 이루어졌던 작은 섬이 있다. ‘모쿠 오로에(Moku o Loʻe)’라는 전통 명칭을 가진 이 섬은, 대중에게는 ‘코코넛 아일랜드(Coconut Island)’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곳은 단순한 휴양지나 자연 보호구역이 아니라, 20세기 중반 이후로 과학적 탐구의 무대였던 장소다. 특히 1990년대까지 하와이 해양생물 연구소(HIMB)의 부속 실험실과 관측 시설이 집중적으로 운영되던 장소로, 해양학 및 생태학 분야 연구의 최전선이었다.섬은 인공 교량으로 오아후 본섬과 연결되어 있어 물리적으로는 고립되지 않았지만,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적 특성상 독립적인 생태 실험이 가능했던 것이 가장 큰 특..
[해외탐방]미시간 이스트타운 학교 폐허 – 낙서로 남은 교육의 자취 닫힌 교문, 열린 기억미시간 북부, 이스트타운의 오래된 학교 하나가 지금은 폐허가 되어 바람만 드나드는 공간이 되었다. 도시가 외곽으로 팽창하면서 중심지에 남은 이 작은 학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그 누구도 새 주인을 자처하지 않은 채로 수십 년의 세월을 견뎌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마주한 건 삭막한 벽돌 외벽과 덜컥거리는 낡은 철문, 그리고 창문을 막아놓은 나무 판자들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 공간이 전하는 첫 감정은 침묵이었다. 마치 그 침묵이 모든 걸 설명해주려는 듯, 바람이 낡은 창살 사이로 스며드는 소리마저 지나간 시간을 속삭이는 듯했다.입구에는 붕괴 위험 경고 팻말이 달려 있었고, 외벽 곳곳엔 낙서와 페인트 자국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반항의 흔적이라기보다는,..
[해외탐방]콜로라도 록스프링스 유령 광산 – 은광의 황혼기 부서진 지붕 아래에서 시작된 여정새벽 공기는 무채색이다. 콜로라도 서부, 록키 산맥 능선 사이를 따라 굽이진 도로를 달리다 보면 사람의 기척은 멀고, 이름 모를 바람과 마른 흙의 냄새만이 주변을 감싼다. 그곳, 록스프링스. 지도를 아무리 확대해도 그 이름은 남아 있지 않다. 이제는 누구도 살지 않고,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 유령 도시.록스프링스는 한때 은으로 반짝였다. 1880년대, 지질학자들이 암석을 뚫어 은광을 발견한 이후부터 채광은 곧 삶이 되었다. 광부들은 매일 깊은 갱도로 들어갔고, 아이들은 기숙사 겸 학교로 향했다. 통조림 공장, 우체국, 교회까지 들어서며 이곳은 작은 하나의 세계처럼 작동했다. 그러나 그 황금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광맥은 생각보다 짧았고, 은값은 대공황과 함께 곤두박질쳤다. 투..
[해외탐방]콜로라도 록스프링스 유령 광산 – 은광의 황혼기 로키산맥 품은 은광 도시의 탄생과 몰락콜로라도 서부 록키산맥의 깊은 협곡 속, **록스프링스(Rocksprings)**는 19세기 후반 은광 붐이 절정이던 시기에 번성한 채광 도시였다. 주변에는 풍부한 은과 납 광맥이 분포했고, 은광주는 이를 바탕으로 급속히 도시를 건설했다. 1880년대 초반만 해도 광산 노동자와 상인들이 몰려들면서 학교, 교회, 술집, 호텔, 은행이 줄지어 세워졌다.하지만 은값이 붕괴되고 채굴이 어려워지자, 인구는 빠르게 떠나기 시작했다. 1910년대 이후 대부분 마을은 포기되었고, 현재는 단 몇 채의 건물과 무너진 광산 입구만이 남아 있다. 이곳은 이제 **“광산의 황혼”**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큼, 과거의 영광이 완전히 사라진 장소다. 녹슨 구조물과 얼음처럼 차가운 침묵탐방객들이..
[해외탐방]플로리다 미사일 사일로 탐험 – 냉전의 깊은 구멍 1. 남부 플로리다, 늪지대 아래 숨겨진 요새플로리다 하면 많은 사람들이 디즈니월드, 해변, 야자수, 또는 따뜻한 날씨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그런 평화로운 풍경 이면에는 우리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냉전시대 군사 유산이 숨어 있다. 특히 마이애미 남부에서 멀지 않은 내륙 지역, 오키초비 호수(Okeechobee Lake) 인근에는 버려진 미사일 사일로들이 조용히 잠들어 있다. 대부분의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현지 탐험가나 군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장소다.이 미사일 사일로는 1960년대 초반, 미국과 소련 사이의 핵무기 위협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건설되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국은 플로리다를 포함한 전략 요충지에 다수의 미사일 발사 기지를 건설했으며, 이중 일부는 지금도 콘크리..
[해외탐방]루이지애나 식민지 폐저택 – 진흙 속 남부 고딕의 전설 늪지 위의 백색 대저택, 그곳에 남은 시간의 잔향루이지애나 주 바토루즈(Baton Rouge) 남쪽, 미시시피강 지류가 휘감는 진흙 늪지대 어귀에 **‘벨 드라므(Belle Drâme)’**라는 이름의 오래된 식민지 시대 대저택이 있다. 정식 지도에는 기록되지 않지만, 현지 탐방자들과 유령 전설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는 ‘남부 고딕 폐저택의 상징’으로 불릴 만큼 유명한 장소다.1790년경, 프랑스계 이주민이 목화 농장 운영을 위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저택은, 백색 목재 외벽과 이오니아식 기둥, 2층 발코니와 검은 셔터창을 갖춘 전형적인 루이지애나 크레올 양식의 건축물이다.세월이 흐르며 이곳은 주인을 수차례 바꾸었고, 남북전쟁 이후에는 일시적으로 병원 겸 피난소로 사용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1..
[해외탐방]캐나다 트리다와 공장 폐허 – 얼음 속에 잠든 철의 도시 북쪽 끝에서 솟아오른 철강 산업의 신화캐나다 온타리오 주 북부에 위치한 **트리다와(Treedawa)**는 대다수의 지도에는 이름조차 명확히 표시되지 않는 작은 도시다. 그러나 20세기 초, 이곳은 북미 산업 지도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철광석 매장량 때문이다. 주변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한 철광과 이를 처리할 수 있는 풍부한 수자원은, 1920년대부터 이곳을 캐나다 철강 산업의 전초기지로 만들었다.당시 세워진 트리다와 제철소는 최신 고로 설비와 선광 시설을 갖춘 대규모 공장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군수물자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 공장은 하루 24시간 돌아갔다. 철도망과 항만이 정비되면서 트리다와는 급속히 팽창했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노동자들로 인해 순식간에 산..
[해외탐방]펜실베이니아 센트레일리아 – 불타는 지하 마을의 종말 지하에서 타오른 불, 마을을 집어삼키다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센트레일리아(Centralia)는 한때 수백 가구가 거주하던 평범한 탄광 마을이었다. 그러나 1962년, 폐광 근처에서 시작된 **지하 화재(Underground Mine Fire)**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당시 불법 쓰레기 소각 과정에서 버려진 탄광 갱도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화재는 땅속 깊은 곳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이를 단순한 사고로 여겨 간단히 진화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지만, 불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로 퍼졌고,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타고 있다.지하 탄층의 복잡한 구조와 높은 인화성 때문에 불은 완전히 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땅이 뜨거워지고, 균열이 생기고,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도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