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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해외탐방]체르노빌 프리피야트 – 잊힌 도시의 방사능 그림자

체르노빌 프리피야트 – 잊힌 도시의 방사능 그림자

 계획도시 프리피야트의 탄생 – 원자력의 미래를 향한 도시

1986년 4월 26일 이전의 프리피야트는, 소련이 자랑하던 최첨단 원자력 도시였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불과 3km 떨어진 이 도시는 1970년대 초에 계획도시로 건설되어 원전 종사자들과 그 가족 약 5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도시 구조는 소련 특유의 기능주의적 모듈에 따라 설계되었으며, 넓은 대로와 녹지, 문화회관, 병원, 학교, 수영장, 유원지 등 모든 기반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

프리피야트는 단순한 노동자의 도시가 아니라, “핵의 이상향”을 상징하는 모델 도시로 여겨졌다. 당시 체르노빌 발전소는 냉전 시기 에너지 경쟁의 중심이었고, 이를 운영하는 인재들을 위한 거주 공간인 프리피야트는 자부심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꿈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그리고 영원히 멈춰버렸다.

 

 

재앙 이후의 침묵 – 정지된 도시의 시간

1986년 4월 26일 새벽, 체르노빌 원전 4호기 폭발 사고가 발생한 뒤 프리피야트의 시계는 멈췄다. 주민들은 사건 당일에도 사고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일상을 이어갔고, 폭발 36시간 뒤에야 비로소 전면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3일이면 돌아온다”는 말에 소지품도 챙기지 못한 채 떠난 주민들은 결국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오늘날 프리피야트는 유령 도시다. 광장이 있던 자리는 잡초와 나무가 자라고, 아파트의 유리창은 대부분 깨졌으며, 놀이공원의 관람차는 녹슨 채로 멈춰 서 있다. 어린이집에는 장난감과 가방이 흩어져 있고, 병원 지하에는 사고 당시 방사선에 오염된 옷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방사능 수치는 여전히 지역마다 다르지만, 장기 체류는 권장되지 않는다.

사진가들과 도시 탐험가들에게 프리피야트는 '정지된 시간'의 정수가 된다. 그곳은 누군가가 살았던 흔적이 아주 구체적으로 남아 있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공간. 바로 그 상반된 감각이 프리피야트를 특별한 폐허로 만든다.

 

 

 

핵 재난의 교육장인가, 관광지인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프리피야트는 제한적으로 공개되기 시작했다.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며 안전 지역을 지정하고, 공식 가이드를 동반한 탐방만 허용하는 방식이었다. 오늘날 체르노빌과 프리피야트 일대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의해 '체르노빌 제외구역(Chernobyl Exclusion Zone)'으로 관리되며, 일정 허가 절차를 거치면 탐사 및 촬영도 가능하다.

이 지역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선 다층적인 의미를 가진다. 일각에서는 ‘재난의 박물관’으로서 핵의 위험성과 기술 오만의 교훈을 전달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다크 투어리즘’의 소비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 2019년 인기 드라마 <체르노빌> 이후 외국인의 방문이 급증하면서, 도덕적 회의감과 상업화에 대한 우려도 동반되었다.

그럼에도 프리피야트가 가지는 상징성은 크다. 이곳은 단순한 핵 재난의 현장이 아니라, 핵이 인간의 일상 속에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80년대 소련의 도시 생활, 기술 낙관주의, 체제의 대응 방식까지 모두 이 공간에 녹아 있다.

 

 

 

방사능 도시를 걷는 법 – 탐험자의 자세와 안전

체르노빌 탐방은 지금도 가이드 투어를 통해 가능하지만,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첫째, 방사능 노출은 일부 구역에서 여전히 치명적일 수 있으며, 가이드는 항상 지정된 안전 경로만을 허용한다. 옷차림은 반드시 긴팔과 장갑, 방진 마스크가 권장되며, 식사나 물 섭취는 정해진 구역 외에서는 금지다.

둘째, 프리피야트의 건물들은 붕괴 위험이 크다. 내부 벽체가 무너진 곳도 많고, 바닥이 침하된 공간도 있어 일반인의 무단 진입은 매우 위험하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일부 무허가 탐험자(이른바 스토커)들의 부주의한 탐사로 인해 사고가 보고된 바 있다.

셋째, 윤리적 시선이 필요하다. 이곳은 단지 '버려진 도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갑작스럽게 삶을 잃거나 터전을 빼앗긴 비극의 장소다. 따라서 촬영이나 글쓰기도 선정적 표현보다는 기록자의 시선과 배려가 필수적이다. 방사능에 대한 경각심을 전하고, 기술과 인간 사이의 균형을 생각하게 만드는 탐방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크 투어리즘의 교차로 – 과거를 대하는 오늘의 태도

프리피야트는 전 세계 다크 투어리즘의 중심에 있는 장소 중 하나다. 그러나 이곳은 단순한 공포나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인류가 저지른 실수와 그로 인한 파괴를 ‘기억’해야 하는 공간이다.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체르노빌 지역이 잠시 점령되며 다시 한 번 핵안보의 위협이 현실로 드러난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였다.

결국 이 도시는 핵이라는 기술의 위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의 책임과 한계에 대해 되묻는다. 프리피야트를 방문한다는 것은 과거를 체험하는 동시에, 현재와 미래를 다시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 잊힌 도시의 조용한 폐허 위에서,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파괴로 남을 것인가, 기억으로 이어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