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시 폐허 탐방

제주 산간의 폐호텔 – 관광 붐의 그늘 아래

제주 산간의 폐호텔 – 관광 붐의 그늘 아래

사라진 리셉션, 버려진 휴양지의 서글픈 입구

제주 중산간 지역의 숲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야자수도 관광버스도 보이지 않는 고요한 언덕 위에 웅크리고 있는 대형 건축물이 하나 눈에 띈다. 유리창은 대부분 깨졌고, 콘크리트 벽면에는 습기와 이끼가 얼룩처럼 뒤덮여 있다. 이곳은 1990년대 말 제주 관광 붐을 타고 세워졌던 ○○리조트 호텔의 잔해다.

당시 제주도는 신혼여행지에서 가족 여행지, 나아가 기업 연수와 외국인 휴양지로의 전환을 꾀하던 시기였다. 그에 발맞춰 산지와 해안 곳곳에는 중소 규모의 호텔, 펜션, 리조트가 우후죽순 들어섰고, 이 호텔도 그런 흐름의 산물이었다. 다만 다른 해변 리조트들과는 달리, 이곳은 자연 속 고요한 프라이빗 공간을 강조하며 고급 휴양지를 표방했다.

그러나 완공 3년 만에 경영난에 빠졌고, 이후 두 차례의 소유권 이전과 단기 재운영을 거쳤지만 지속적인 수요 확보에 실패하면서 2008년부터 완전히 폐쇄됐다. 이후 인근에 더 큰 브랜드 호텔들이 들어서면서, 이 산속 리조트는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졌다.

 

 


 리노베이션도 닿지 못한 로비의 정적

건물 내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넓고 비어 있는 로비 공간이다. 벽면에는 고급 자재를 썼던 흔적이 남아 있고, 천장에서 떨어진 샹들리에 조각과 깨진 타일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프런트 데스크의 이름표는 떨어져 나갔고, 안내용 디지털 시계는 더 이상 시간을 표시하지 않는다.

특이하게도 로비 한쪽 구석에는 아직도 리모컨, 팸플릿, 안내전단 등이 쌓여 있었고, 어떤 서랍 안에서는 고객 응대 매뉴얼과 미사용 체크인 양식이 그대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 공간이 운영을 중단할 때, 얼마나 급하게 정리되었는지 상상하게 만든다.

객실로 이어지는 복도는 어둡고 축축하다. 일렬로 늘어선 객실 중 일부는 문이 열린 채 방치돼 있고, 안에는 가구들이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먼지를 뒤집어쓴 상태다. TV와 전화기, 미니바, 욕실 어메니티까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침대 위에선 이불조차 완전히 치워지지 않아, 마치 퇴실 직후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관광개발의 명암, 누구의 리조트였나

이 폐호텔이 주는 인상은 단순한 붕괴보다도 **‘투자 실패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더 크다. 이곳은 제주도 전역의 중산간 지역을 개발하려는 시도의 일부로, 당시 지방정부와 외부 기업이 함께 추진했던 수십 개의 관광 인프라 중 하나였다. 목적은 단순했다. 해변에서 벗어난 자연 지형에도 관광객을 유도하겠다는 전략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관광객들은 여전히 바다를 선호했고, 교통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 호텔은 애초의 기대만큼 수익을 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 지역 주민들조차 이 리조트가 들어선 이유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정도로, ‘외부를 위한 개발’이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지역 고용 창출 효과도 미미했고, 주변 상권과의 연계성 역시 부족했다.

결국 이 호텔은 관광 전략의 실패, 부실한 운영 계획, 지역 연계 부족이라는 세 가지 요인이 겹치며 조용히 사라지게 된 사례로 기억된다. 그 잔해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유는, 철거 비용조차 감당되지 않을 만큼 이곳이 사업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이다.

 

 


 작가들과 폐허 마니아들의 시선

이 폐호텔은 관광객보다는 도시탐방가, 사진가,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장소가 되었다. 웅장한 규모의 호텔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기록하기에 이만한 피사체는 드물기 때문이다. 벽지가 벗겨지고, 로비의 유리가 깨지고, 객실 안의 습기 찬 침대가 내뿜는 공기까지, 이곳은 **‘정적인 폐허미’**의 전형이다.

예술적 활용도 점차 늘고 있다. 몇몇 국내외 사진작가는 이곳에서 촬영한 작품으로 전시를 열기도 했고, 인디 영화의 폐허 배경으로 쓰인 적도 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접근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문제로 지적받는 무단 침입과 안전 문제가 뒤따른다.

실제로 이 호텔 내부는 구조가 불안정하고, 누전 가능성이 있는 전기시설, 물이 고인 복도, 부서진 계단 등 여러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외부 철제 난간 일부는 녹이 심하게 슬어 있으며, 유리파편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접근은 충분한 조명, 보호 장비, 동반자의 유무 등 만반의 준비 없이 감행해서는 안 된다.

 

 


 실패의 유산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이 호텔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외지인의 손에 세워졌고, 지역의 동의 없이 운영됐으며, 결국 방치된 채 버려졌다. 그러나 이 폐허는 제주가 겪어온 관광 개발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반성의 장소로 기능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실패한 투자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기억되고 분석되어야 할 사회적 실험의 흔적이다.

탐방자에게도 이곳은 또 다른 의미가 된다. 폐허를 보는 것은 단지 흥미의 대상이 아니라, ‘한 시대가 놓친 균형’을 목격하는 일이다. 개발과 자연, 외부와 지역, 자본과 공동체 사이의 균열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현장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록은 필요하며, 동시에 존중의 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

제주 산간의 폐호텔은 말이 없다. 그러나 벽 너머의 침묵은, 우리가 들어야 할 질문을 품고 있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 침묵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