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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제주 ○○초등학교 폐교지 – 분교의 흔적을 따라 걷다

돌담 너머로 남은 교정, 고요히 멈춘 시간

제주도 동부의 한 조용한 마을. 차로 이동하던 중 길가에 나지막한 돌담이 이어지다가, 문득 그 너머로 운동장이 펼쳐진다. 처음엔 작은 마을회관쯤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벽에 희미하게 남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초등학교 ○○분교’. 이곳은 1960년대 개교해 2000년대 중반 폐교된, 제주의 한 시골 초등학교 분교지다.

제주의 분교들은 대개 오름 아래나 농경지 인근에 자리 잡고 있으며, 교통이 불편한 마을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엔 30~50명 규모의 소규모 학급이 운영됐고, 마을 주민들과 교사들이 하나의 공동체처럼 얽혀 있었다. 이 학교도 한때는 마을 전체의 심장이었다. 체육대회와 학예회, 방과 후 농촌일손 돕기까지. 아이들이 떠난 지금도 돌담은 단정하게 남아 있고, 운동장의 흙은 바람에 쓸리며 여전히 평평하게 다져져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정적뿐이다. 교실 창문은 부서졌고, 칠판에는 오래전 수업 흔적이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시간은 멈췄고, 그 속에서만 과거의 분교가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제주 ○○초등학교 폐교지 – 분교의 흔적을 따라 걷다

 

교실 안의 잔상, 분교가 남긴 교육의 얼굴

교실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과 햇빛이 기울어지는 창 너머의 먼지들이다. 교탁은 그 자리에 있고, 책걸상은 가지런하지 않지만 모두 남아 있다. 칠판 위에는 무심한 분필 자국이 흐릿하게, 그러나 여전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남아 있다. 날짜는 2004년, 마지막 학기일 가능성이 높다.

특이한 건 벽면에 걸려 있는 지역신문 스크랩과 아이들이 그린 마을 풍경화다. 작은 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만든 추억의 흔적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 분교는 단지 ‘교육’의 기능을 넘어서, 공동체의 기록과 정체성을 담은 장소였다.

분교는 도시 학교와 달랐다. 아이들은 수가 적었고, 모든 학년이 한 반에서 수업을 받았다. 선생님은 단 한 명이었으며, 급식도, 방과후 프로그램도 전무했지만, 오히려 그 안엔 정서적 친밀감교육의 원형이 살아 있었다. 아이들이 이름을 다 알고, 선생님은 가정사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시절. 폐교된 교실은 바로 그 '단단했던 공동체 교육의 모델'을 보여준다.

 


 

제주의 교육 정책과 소멸하는 학교들

제주의 폐교 수는 2000년대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농촌 지역과 산간 지역의 분교들은, 학생 수 감소로 인해 통폐합되거나 통학버스 제도로 전환되며 그 역할을 멈췄다. ○○초등학교 ○○분교 역시, 본교로의 통합 방침에 따라 정식으로 문을 닫았고, 이후 매각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한 인구 감소 이상의 사회 변화와 맞물려 있다. 제주 내륙 지역의 고령화, 청년층의 도시 유출, 초저출산 흐름은 교육 현장을 가장 먼저 타격했다. 과거엔 마을마다 분교가 있었지만, 지금은 읍 단위 학교도 과밀 또는 과소화 문제가 동시에 나타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더불어 행정 효율화를 앞세운 폐교 정책은 **‘공간이 가진 역사성’**을 간과했다. 많은 분교들이 관광지 개발, 민간 임대, 방치로 전환되면서 원래 있던 마을 공동체와의 연결도 끊겼다. 분교는 더 이상 마을의 기억을 품지 못하고, 그저 기능을 다한 건물로 남게 되었다.

 

 


 

 

기록과 창작의 공간으로서의 전환 가능성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들어 이러한 분교들은 새로운 문화적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과거의 책걸상과 교실 풍경, 손때 묻은 도서와 엽서, 그리고 고요한 교정은 작가와 사진가, 영상 제작자들에게 ‘잊힌 이야기의 무대’로 재해석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촬영지로, 독립영화 배경으로, 심지어 전시 공간이나 작은 문학관으로 탈바꿈한 폐교 사례도 늘고 있다.

○○분교 역시 그 가능성을 품고 있다. 교육 시설이었던 만큼 공간의 구조는 기능적으로 잘 짜여 있으며, 마을과의 연계성도 분명하다. 또한 마을 주민들에게 여전히 ‘학교’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재사용 시 감정적 저항이 적은 편이다. 단지 재생을 위한 관심과 예산, 그리고 적절한 운영 주체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러한 장소는 단지 과거를 보존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문화와 기억의 생산지가 될 수 있다. 분교라는 장소가 가진 고유한 밀도와 정서는 오히려 현대적 공간에서는 흉내 내기 어려운 진정성을 품고 있다.

 


 

작고 느린 공간이 전하는 울림

폐교된 분교를 걷다 보면, 의외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무언가를 찾아 들어간 공간이지만, 오히려 잃은 것들이 더 선명히 다가오기 때문이다. 작은 교실, 금이 간 칠판, 바람에 흩날리는 분필 가루.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사라졌기 때문에 더 강하게 남는다.

이제 이곳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대신, 우리의 질문이 남는 곳이 되었다. 왜 이 분교들은 하나둘 사라졌고,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가. 폐허 탐방은 이런 물음의 시작이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교육과 공동체가 남긴 자취에 대한 예의 있는 발걸음으로 남아야 한다.

○○초등학교 ○○분교는 제주 땅의 어딘가에서 여전히 조용히 시간을 견디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교육이란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