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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제주 중산간의 버려진 군 관사촌 – 침묵의 벽돌 건물들

제주 중산간의 버려진 군 관사촌 – 침묵의 벽돌 건물들

삼나무 숲을 뚫고 들어선 폐허의 마을

제주 중산간 지역, 해발 약 400m 지대. 대형 농장이 끊기고, 삼나무 숲이 연이어 펼쳐지는 한적한 도로변에서,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는 벽돌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은 과거 군인과 그 가족들을 위한 관사촌으로, 1980년대 후반 군 전략 거점으로 활용되던 시절 조성된 주거지다. 현역 부대 인근에 위치한 이 관사들은 비상시 작전 대비와 장기 근무자 주거 안정 목적의 일환으로 설계됐지만, 부대 해체와 군 조직 개편 이후 전면 폐쇄되었고 지금은 출입이 통제된 상태다.

관사촌은 외부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수목이 울타리처럼 둘러져 있고, 담벼락 대신 작은 계곡과 언덕이 자연 경계선 역할을 한다. 접근은 어렵지 않지만, 실제로 이곳이 폐허라는 걸 인지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건물들의 형태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주변이 조용하기 때문에 마치 누군가 살고 있는 마을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폐허 특유의 정적과 이질감이 공간 전체를 감싼다.

 

 

건축 구조로 드러나는 군의 일상

관사촌의 건물들은 모두 동일한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짜리 단독주택형 구조다. 격자창과 콘크리트 포치, 일자형 복도가 기본 설계이며, 각 동마다 같은 규격의 정원과 보일러실이 붙어 있다. 실내 구조는 효율성을 극대화한 전형적인 군 주거 모델로, 좁은 복도와 세 칸짜리 방, 외부 창고가 붙은 구조다. 벽지와 마루, 싱크대 등은 대부분 뜯겨 나갔지만, 철제 문틀과 일부 전기설비, 개수대는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엇보다 이 공간의 인상적인 점은, ‘주거였던 흔적’이 유독 생생하다는 것이다. 어느 집에는 어린이 장난감이, 또 다른 집에는 쓰다 만 생활용품이 아직 남아 있어, 사람이 갑작스럽게 떠난 자리처럼 느껴진다. 거실 벽면의 일부는 벗겨진 도배지 뒤로 군 부대 복무표가 붙어 있었고, 정원에는 바람에 날려온 군 훈련 지침서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이러한 흔적들은 이 관사촌이 단지 군사적 기능을 넘어 ‘삶의 공간’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흔히 군 시설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기계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이곳은 아이들이 뛰놀고 가족이 함께 식사하던 ‘일상의 장소’였다. 그렇기에 이 폐허는 유독 정적이 깊고, 감정적으로도 많은 여운을 남긴다.

 

 

제주 군사시설과 민간의 거리감

이 관사촌이 특별한 이유는, 제주라는 지역 특수성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제주는 한반도 남단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냉전기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다양한 군사 시설이 비공식적으로 운영됐다. 관사촌 주변에도 탄약고, 레이더 기지, 장비 보관소 등이 존재했으며, 지금도 일부 구역은 출입이 통제된 채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 시설은 대체로 민간과 단절된 공간이었다.

제주 주민들에게 군대는 단순한 고용 창출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외부 자본과 중앙정부의 명령에 의해 설치된 군 시설은 종종 지역 커뮤니티와의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관사촌은 그 경계에 있었다. 실제로 이 마을에서 살았던 군 가족들이 지역 학교와 마트, 병원을 이용할 때 겪은 미묘한 거리감은 당시 뉴스와 지역지에도 몇 차례 소개되었다.

폐허가 된 지금, 관사촌은 물리적 단절뿐 아니라 정서적 고립의 흔적까지 드러낸다. 건물의 외부와 내부가 분리되어 있듯, 지역과 국방, 공공과 사적 생활의 경계가 이곳에서 모호하게 얽혀 있다. 이는 단순한 부대의 흔적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공동체의 경계’를 어떻게 규정해왔는지를 반영하는 하나의 거울이다.

 

 

도시 탐방자의 입장에서 본 관사촌

관사촌은 겉으로 보기엔 무척 매력적인 탐방지다. 군 시설 특유의 질서 있는 배치, 보존 상태 좋은 벽돌 건물, 그리고 비교적 낮은 붕괴 위험성 때문에 사진가, 다큐멘터리 제작자, 심지어 미술 작가들에게도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이곳은 현재 사유지로 분류되어 있어 무단 출입은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주변에는 여전히 군 관련 시설이 일부 남아 있으므로 위치 노출이나 영상 촬영 시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탐방자는 이 공간을 소비 대상이 아닌 기록의 대상으로 접근해야 한다. 폐허는 낭만이 아니라 책임이다. 군 관사라는 구조적 특성상, 내부에는 민감한 문서나 장비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고, 그 자체가 보안 문제로 번질 여지가 있다. 또한 폐허가 된 이유와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접근할 경우, 자칫 콘텐츠가 선정적이거나 왜곡될 수 있다.

따라서 이 공간을 다룰 때는 스토리 중심의 해석이 중요하다. 누가, 왜, 어떻게 이곳에 살았고, 무엇이 이들을 떠나게 했는지. 관사촌을 둘러싼 이야기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에서 출발해야 하며, 그것이 진짜 탐사 콘텐츠가 가질 수 있는 깊이다.

 

 

침묵의 공간, 관사촌이 던지는 질문

이제 이곳은 누구의 공간도 아니다. 군은 떠났고, 가족도 사라졌으며, 지역사회는 잊었다. 남은 것은 벽돌 건물과 무성한 잡초, 그리고 지나간 시간뿐이다. 하지만 바로 그 침묵이, 이 공간이 가진 가치를 다시 묻게 한다. 우리가 만들어놓고, 버리고, 잊어버린 이 도시의 구석은 우리 자신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탐방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남겨진 것’을 보기 위함이 아니다. 소외된 장소가 말하는 함의를 듣고, 기록으로 환원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관사촌은 국가와 개인, 중심과 주변,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애매한 위치에 놓인 공간이다. 그만큼 이곳을 기록하는 일은 중요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이제는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이 군 관사촌이야말로, 오히려 가장 우리 사회의 구조를 묻는 장소일 수 있다. 도시 외곽의 붉은 벽돌 건물들 사이를 걷는 일은, 단순한 폐허 탐방이 아닌 사람과 제도의 궤적을 되짚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