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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제주 사라진 워터파크, 버려진 물의 도시

 물의 낙원이었던 그곳, 폐허가 된 유희의 공간

제주 동부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잡초로 가득한 넓은 부지 한가운데 정체불명의 슬라이드 구조물이 삐죽 솟아 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아무런 표식도 없고 사람도 드물지만, 이곳은 한때 가족과 연인들이 몰려들던 유명 워터파크였다. 2000년대 중반 개장한 이 워터파크는 제주 관광객 증가에 발맞춰 수상 레저의 허브를 자처했으나, 개장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폐쇄되었다.

물결 모양의 구조물, 곡선을 그리는 슬라이드, 해변과 연결된 풀장 등은 지금도 그 형태를 간직하고 있으나, 물은 말라버렸고 철골은 녹이 슬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높이 솟은 메인 타워인데, 과거에는 수백 명의 발자국이 오르내리던 계단이 이제는 삐걱거리는 소리만 남았다. 폐허라는 말은 이처럼, 사람의 부재뿐 아니라 기능의 상실에서 비롯된다. 이 워터파크는 단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물이 떠난 이후의 도시 유흥의 폐허로 남아 있다.

 

제주 사라진 워터파크, 버려진 물의 도시

유흥의 잔해, 슬라이드 아래의 공허함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그곳이 단지 놀이터였음을 잊을 만큼 쓸쓸한 풍경이 펼쳐진다. 곳곳에 깨진 플라스틱 부표, 반쯤 벗겨진 안내 표지판, 엎어진 파라솔들이 방치돼 있다. 일부 탈의실과 샤워장은 여전히 원형을 간직하고 있지만, 전기는 끊긴 지 오래고, 타일 사이사이로 잡풀이 자라난다. 사람이 만든 유희의 흔적이 이렇게까지 황폐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랍게 느껴진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메인 풀장의 바닥이었다. 투명한 물로 가득 찼던 수영장은 현재 빗물과 낙엽, 쓰레기로 뒤덮여 있고, 바닥엔 작은 균열이 생겨있었다. 물이 채워져 있을 땐 보이지 않던 구조적 결함이, 지금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물속이라는 환상의 무대가 사라지자, 콘크리트의 거친 피부가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이런 장면들은 단순히 폐허의 미학을 넘어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공간을 만들고, 또 얼마나 쉽게 버리는지를 되묻게 만든다. 한때 환호가 울려 퍼지던 장소는 이제 침묵 속에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슬라이드 아래의 공허함은 그 어떤 텅 빈 방보다 묘하게 마음을 무겁게 한다.

 

 

제주의 개발 열기와 무계획 유락지의 끝

이 워터파크는 제주 지역의 무분별한 관광 개발이 낳은 폐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대 중후반, 제주는 국내외 관광객의 폭발적인 증가와 함께 수많은 테마형 관광지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워터파크도 그 중 하나였다. ‘제주에 물놀이 명소가 없다’는 틈새를 공략해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고, 외지 자본과 제주도청의 관광 장려 정책이 손을 맞잡았다.

그러나 수요 예측의 오류와 운영 경험 부족, 그리고 시즌제 관광지의 한계는 곧 한계에 부딪혔다. 실내형이 아닌 야외 위주의 시설은 여름을 제외하면 이용률이 현저히 낮았고, 비나 태풍에 쉽게 노출되는 구조 역시 유지비용을 급증시켰다. 결국 개장 7~8년 만에 수익성 악화로 문을 닫았고, 운영 법인도 해산되면서 이 워터파크는 제주도 관광의 실패 사례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제주 곳곳에서 반복된다. 정글 테마파크, 해양박물관, 동물 카페 등 수많은 유락 시설들이 생겨났고, 상당수가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쇄되었다. 워터파크 폐허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관광 도시가 되기 위해 제주가 감당해온 비용과 그 이면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버려진 물의 도시’를 기록하는 이유

지금도 이 워터파크는 청소년들의 탐방 장소로 종종 회자되지만, 사실 이곳은 물리적으로 위험한 장소다. 미끄러지는 슬라이드 구조물은 녹슬었고, 난간 일부는 떨어져 나간 상태다. 메인 건물 내부는 일부 바닥이 꺼져 있어 탐방 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장마철에는 빗물이 고여 구조물이 미끄럽고, 곰팡이나 세균 등 위생 위험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자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물이라는 일시적인 매개가 사라진 뒤 남은 도시의 흔적은, 우리가 무엇을 축적하고 무엇을 포기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폐허란 단순히 오래된 것이 아니라, 의미 없이 소비되고 버려진 공간이 가진 부끄러운 진실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탐방자는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카메라와 펜으로 그 풍경을 정직하게 담아야 한다. 슬라이드 위에 올라가 셀카를 찍기보다, 철골과 콘크리트가 만들어낸 거대한 구조의 허무함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바로 이 공간을 유의미하게 기억하는 방식이며, 도시와 인간이 만든 실패를 학습하는 태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