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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광주 ○○중학교, 페인트 벗겨진 칠판 속의 기억

 

골목 어귀에서 멈춘 시간, 폐교의 첫인상

광주 북구의 한 오래된 주택가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철제 대문이 녹슬어 벌어져 있는 폐교 한 채가 시야에 들어온다. ○○중학교라는 이름을 가졌던 이곳은,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운영되던 지역 중학교로, 당시에도 학생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소규모 교육기관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인근 지역의 인구가 감소하고, 대형 학교로 통폐합되면서 자연스럽게 폐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지금은 낡은 운동장과 무너져 내린 담벼락, 잡초로 덮인 교문만이 그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대문을 넘어서 내부로 들어가면, 마치 시간이 20년쯤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곳곳에 남아 있는 표어, 일기장 조각, 그리고 아직도 매단 채로 남은 학급 안내표는 누군가 이곳에서 교실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생히 증명한다. 정전된 복도에는 교탁과 책걸상이 뒤엉켜 있고, 창문은 대부분 깨져 있다. 하지만 그런 폐허 속에서도 ‘학교였던 기억’은 곳곳에 남아 있다.

광주 ○○중학교, 페인트 벗겨진 칠판 속의 기억

 

교실 속의 잔상과 벽에 남은 풍경

○○중학교의 내부는 폐허로 변했지만, 그 속에는 놀라울 만큼 다양한 요소들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특히 교실 한쪽에 있는 칠판은 유독 인상적이다. 페인트가 벗겨진 표면에 아직도 희미하게 ‘2학년 3반’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고, 구석에는 분필 자국으로 누군가 그린 만화 캐릭터와 수학 공식이 뒤섞여 있다. 교실 뒤편의 게시판은 낡은 색종이와 연습장의 테두리로 꾸며져 있었고, 떨어진 메모 중에는 ‘오늘은 급식 안 나와요’라는 문구가 있어 미소를 짓게 만든다.

교무실에는 아직도 서류함과 전화기, 낡은 복사기 등이 놓여 있었으며, 책상 서랍에는 각종 회의록과 지출 내역, 학부모 회의 결과지가 보존되어 있다. 복도 끝에는 과학실과 음악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고, 과학실에는 아직도 일부 실험기구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 특유의 냄새, 석면 타일 위로 남은 발자국, 교실 사이사이 남겨진 개인 사물함은 이 공간이 단순한 건물이 아닌, 누군가의 하루하루였음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지역 사회와 폐교 공간의 단절된 관계

폐교 이후 이 지역 주민들은 ○○중학교 자리를 둘러싸고 여러 갈등과 논의를 겪어 왔다. 방치된 공간이 범죄 발생 우려나 청소년의 비행 장소가 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동시에 이곳을 문화 공간이나 복합 커뮤니티 센터로 활용하자는 제안도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이 학교를 졸업했던 동문들은 폐교 부지를 시민의 기억과 추억이 담긴 장소로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행정적 예산 문제와 재개발 논의 사이에서 이 공간은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고, 외지 탐험자들의 발길이 오히려 이 장소를 다시 주목받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폐허 탐방 유튜버나 사진작가들이 찍은 흑백 사진 속의 교실, 칠판, 교무실은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여러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이는 슬퍼했고, 또 어떤 이는 어릴 적 기억이 되살아났다고 했다. 폐교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감정이 집적된 장소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폐허 탐방에서 추억 기록으로

폐교를 탐험하는 행위는 단순히 낡은 건물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과거의 집단적 기억을 마주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자신이 잊고 지냈던 유년 시절, 혹은 학교라는 제도와 장소가 가졌던 역할을 되새기는 시간이다. 광주의 ○○중학교를 방문하며 느꼈던 것은, 여전히 이 공간에 이야기가 ‘살아 있다’는 점이었다. 학생들의 낙서, 게시판에 붙은 상장, 오래된 종례 시간표 등은 이 학교가 한때 수많은 하루들을 품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폐교라는 공간은 도시의 변화를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과거의 흔적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우리가 기억을 잃는 속도가 더 빠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폐허의 기록은 더욱 소중하다. 어떤 이는 폐허를 두려움의 공간으로 보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기록과 기억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이제 ○○중학교의 칠판에는 아무도 글을 쓰지 않지만, 누군가는 그 위에 기억을 덧입히며 조용히 그 공간을 다시 되새기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