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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순천 폐산업단지 촬영 후기 – 시간 속에 머문 공장

유휴지로 남겨진 철의 구조물, 폐산업단지의 첫인상

  전라남도 순천은 정원도시이자 생태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도심 외곽에는 산업의 시대가 남긴 거대한 잔상이 남아 있다. 바로 순천 ○○산업단지. 한때 화학 가공과 기계 조립으로 붐비던 이곳은 1990년대 후반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주요 기업의 철수와 함께 급속도로 기능을 잃었다. 지금은 일부 창고와 공장동이 남아 있을 뿐이며, 나머지 지역은 철거된 뒤 유휴지로 방치돼 있다.

폐허가 된 산업단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기자재나 생산 설비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 규모다. 붉은 벽돌의 외장재로 마감된 긴 창고, 내부가 텅 빈 컨베이어 구조물, 그리고 녹이 슨 환기 덕트들이 이어져 있다. 곳곳에 적재된 철제 드럼통과 방치된 지게차의 바퀴자국은 아직 시간이 완전히 흐르지 않은 듯한 인상을 남긴다. 바닥에는 비에 젖은 시멘트와 낙엽이 뒤섞여 있어, 누군가의 퇴근 이후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준다.

순천 폐산업단지 촬영 후기 – 시간 속에 머문 공장

 

카메라로 담아낸 잔존의 미학

 

순천 폐산업단지를 방문한 가장 큰 이유는 사진 촬영이었다. 낡은 기계, 고장 난 제어판, 산화된 철판 위로 스며든 자연광은 사진가들에게 있어 무한한 창작의 재료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피사체를 담는 것을 넘어서, 그 시간의 흐름까지도 한 장면 안에 눌러 담을 수 있다.

내부 구조물은 대부분 기능을 잃었지만, 대형 스포트라이트와 인버터 전선, 제어용 벽면 단자가 비교적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촬영 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정지’ 상태로 멈춰 있는 제어반이었다. 초침을 멈춘 시계처럼, 그 기계는 여전히 조작을 기다리는 듯 조용히 서 있었다. 무채색에 가까운 톤 속에서 붉은 비상벨이나 노란 표지판이 주는 색 대비는 이미지의 강렬함을 높인다.

광각렌즈를 사용해 공장 내부의 스케일을 극적으로 담아내고, 노출을 낮춰 빛의 유입을 조절하면 산업 유산의 쓸쓸하면서도 위엄 있는 분위기가 강조된다. 특히 이곳은 오전보다 오후 늦은 시간대의 자연광이 더 극적이며, 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조건에서 최고의 장면이 포착된다.

 

산업의 궤적이 남긴 지역의 풍경

 

순천 산업단지는 단순한 공장의 폐허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의 산업화 궤적이 고스란히 각인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제품은 과거 순천뿐 아니라 광양항을 통해 전국으로 운송되었고, 한때 지역 일자리의 중심축이었다. 폐쇄 이후, 관련 소상공인들은 폐업하거나 업종을 전환했으며, 지역의 노동 인프라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폐쇄 이후에도 이 지역은 완전히 잊히지 않았다. 최근에는 독립영화나 뮤직비디오의 로케이션 장소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예술인이나 도시기록가들이 이곳을 탐방하며 지역의 산업 유산을 재조명하고 있다. 순천시는 일부분을 리모델링하여 창작 공간이나 산업유산 아카이빙 장소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으나, 예산과 시민 의견의 격차로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다.

이처럼 과거의 산업공간은 그 자체로 역사이자 풍경이며, 지역 주민들에게는 일종의 기억 저장소다. 더 이상 기계를 돌리진 않지만, 이곳은 여전히 도시의 유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폐산업단지 촬영 시 체크포인트와 유의사항

 

  폐산업단지 촬영은 매우 매력적인 활동이지만, 동시에 주의해야 할 요소도 많다. 우선 이 공간은 공식적으로 개방된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진입 전 반드시 토지 소유자나 관리기관과 협의가 필요하다. 무단 침입 시 불법촬영 혹은 건조물침입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일부 지역은 안전펜스가 설치되어 있으며, 경고 문구가 부착된 곳은 절대 넘지 말아야 한다.

물리적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구조물은 대부분 노후되어 있어 붕괴 위험이 있으며, 녹슨 철판이나 깨진 유리, 바닥의 배선 잔해 등이 촬영 중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장비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백팩이나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함께 이동할 수 있는 팀원과 동행하는 것이 안전하다.

또한 폐공장 내부에는 분진이나 화학 잔여물이 남아 있을 수 있다. 특히 페인트 가루, 석면 타일 조각 등은 호흡기를 통해 체내에 유입될 경우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필터 기능이 강화된 마스크 착용이 권장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록은 하되, 훼손은 하지 않는다’는 윤리적 탐방 자세다. 오직 그 공간의 현재를 담기 위해 존재한다는 겸허한 태도가 이곳을 지켜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