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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제주 구 외국인 리조트 단지, 폐허의 휴양지

번영의 꿈이 멈춘 그곳 – 리조트의 잔해를 마주하다

제주 서귀포시 한적한 해안가. 한때 외국인 전용 리조트 단지가 들어서며 ‘한국의 몰디브’를 꿈꾸었던 지역이 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완만한 언덕과 천혜의 자연 경관, 그리고 고급스러운 설계를 자랑하던 이 단지는 2000년대 초반 외국 자본과 함께 대대적인 개발 계획이 추진됐으나, 경기 침체와 투자 철회로 결국 완공되지 못한 채 사업이 중단됐다.

현재 이 리조트 단지는 ‘폐허’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호텔동의 외벽은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수영장 부지는 잡초로 뒤덮였다. 미완공 상태로 수년간 방치된 건물들은 도중에 건축이 중단된 탓에 구조적 안정성조차 불확실하다. 출입을 막는 울타리는 오래전에 무너졌고, 지역 주민들조차 “어디가 어딘지 모른다”고 말할 만큼, 이곳은 자연과 시간 속에 서서히 사라지는 중이다.

 

 

건축의 유령 – 내부 구조와 설계의 흔적

이 단지를 찾은 이유는 단순한 폐허 탐방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건축적으로, 이곳은 외국 자본이 한국 리조트 시장에 어떤 기대를 품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유럽풍 석조 구조물, 곡선형 복층 로비, 채광을 극대화한 통유리 벽면 등은 분명 고급 리조트를 목표로 설계된 흔적이었다.

1층 로비는 아직도 커다란 샹들리에 프레임이 천장에 걸려 있었으며, 프론트 데스크는 이미 철거됐지만 그 위에 얹힌 대리석 조각과 커튼 레일만으로도 당시의 고급스러움을 가늠할 수 있었다. 숙박동 내부는 각 객실마다 발코니가 설치되어 있었고, 어떤 객실에서는 욕조와 샤워부스의 배관 구조까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건축적 디테일은 이제 먼지와 곰팡이, 강풍에 노출된 채 침식되고 있다. 부서진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은 벽지를 뜯어내고, 곰팡이의 자국은 천장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 오히려 황폐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이 리조트의 몰락이 단순한 실패가 아님을 알려준다.

 

제주 구 외국인 리조트 단지, 폐허의 휴양지

 

제주 관광 개발과 지역사회의 충돌

이 폐허가 주는 인상은 건축적 비극을 넘어서, 제주도 관광 개발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주도는 지난 20여 년간 ‘관광 중심 경제’를 표방해 왔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대규모 개발이 추진되었다. 그 중 상당수는 외국 자본 유치와 고급 리조트 중심의 모델을 지향했지만, 대다수가 중도 좌초하거나 사회적 갈등을 낳았다.

이 리조트 단지 역시 초기에는 지역 경제에 대한 기여가 기대됐지만, 정작 건설 과정에서 지역 일자리나 주민 혜택은 미미했다. 환경영향평가와 문화재 조사도 부족한 상태에서 추진됐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일부 주민들은 “제주가 점점 외지인의 섬이 되어간다”며 반발했다. 결국 자본 철수와 사업 포기로 이어졌고, 남은 건 낡은 콘크리트 구조물뿐이다.

이처럼 제주도의 폐허는 자연스럽게 생성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과잉된 기대와 무계획한 투자의 결과다. 이러한 장소들은 단순히 낡고 버려진 풍경이 아니라, 정책과 시장의 충돌이 만든 상처이기도 하다. 그래서 탐방자는 이곳에서 단순한 ‘사진’을 넘어서, 하나의 사회적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탐방자의 시선, 책임 있는 기록의 의미

이 단지는 현재 공식적으로 폐쇄된 지역이지만, 경계가 무너진 탓에 종종 탐방자들이 출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사진가들이나 도시기록자들에게 이 공간은 매우 유혹적인 피사체다. 실제로 내부 구조의 개방성과 조명 구조, 그리고 바다를 배경으로 한 풍경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공간을 다루는 자세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우선 탐방자 윤리가 중요하다. 무단 침입은 법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며, 구조물 훼손이나 도구의 유실 등은 현장 보존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또한 온라인에 사진이나 영상을 업로드할 경우, 위치 정보나 민감한 시설 정보는 가급적 노출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불특정 다수의 무단 출입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폐허는 그 자체로 ‘기록 대상’이지만, 동시에 경고의 장소이기도 하다. 실패한 자본과 과잉된 욕망, 그리고 잊혀진 자연의 회복력이 겹쳐진 공간에서 우리는 도시와 자연, 개발과 보존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게 된다. 제주 구 외국인 리조트 단지는 비록 현재는 붕괴된 풍경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야말로 미래의 도시를 결정짓는 방향키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