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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해외탐방]루마니아 파라노마 정신병원 – 고딕의 저편에 남겨진 기록

고딕 건축과 폐허가 된 치료 공간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 브라쇼브에서 멀지 않은 산기슭의 어두운 숲 속. **파라노마 정신병원(Paranoma Psychiatric Hospital)**이라는 이름은 공식 지도에서도 찾기 어렵지만, 지역 사람들 사이에선 오랫동안 ‘버려진 고딕 병원’으로 불려왔다.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이 병원은 초창기에는 귀족 출신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요양 시설로, 고풍스러운 고딕 양식의 건축과 정돈된 정원 구조를 자랑했다.

세로로 길게 늘어선 주 병동, 삼각 지붕 위에 세워진 시계탑,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등은 당시 유럽 정신의학이 ‘치유’와 ‘격리’를 병행하던 시기의 건축 철학을 잘 반영한다. 병원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치료소로도 사용되었으며, 냉전기에는 루마니아 국가보안국(Securitate)의 감시 대상 환자들을 수용한 비공식 장소로 기록된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병원의 운영은 급격히 불안정해졌고, 1989년 루마니아 혁명 이후 공산정권이 붕괴되면서 파라노마 병원도 공식 폐쇄되었다. 이후 수십 년간 이곳은 문을 닫은 채 방치되었고, 현재는 이름 없는 폐허 속의 유령병원으로 탐방자들 사이에서 은밀히 회자되고 있다.

[해외탐방]루마니아 파라노마 정신병원 – 고딕의 저편에 남겨진 기록

 

침묵의 병동, 잊힌 기록의 조각들

병원을 직접 찾은 탐험자들은 그 내부에 대해 한결같은 증언을 남긴다. 어둡고 축축한 복도, 곳곳에 남겨진 의료기기, 낙서가 가득한 진료기록지. 그리고 의외로 잘 보존된 병실 내부 구조. 병상은 대부분 녹슬었지만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타일로 된 세면대나 욕조, 철제 휠체어가 구석에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병원 중심부에는 원형 수술실로 추정되는 공간이 존재하는데, 천장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구조와 둥글게 배치된 전등 자리는 마치 연극 무대 같은 느낌을 준다. 더불어 일부 공간에서는 의약품 병이나 라벨이 떨어진 약 포장이 발견되기도 해, 이곳이 단순한 격리 시설이 아닌 실제 치료 행위가 이루어졌던 장소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병원 지하에는 비공개 문서들이 남아 있었다는 소문이 돌며, 지역에서는 이 병원이 과거 정치범의 강제 수용소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공식 문서는 대부분 폐기되었고, 소문 역시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렇기에 파라노마 병원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라, 아직까지도 해석되지 않은 역사적 퍼즐처럼 남아 있다.

 

 

 

루머와 전설, 그리고 무속적 신비감

파라노마 정신병원은 단지 의료 시설이 아니라, 루마니아 지역 민속과 오컬트 전설이 덧입혀진 장소이기도 하다. 유럽 전역에 존재하는 폐정신병원들처럼, 이곳도 ‘귀신이 나온다’, ‘실종자가 있었다’, ‘밤에는 웃음소리가 들린다’는 식의 괴담이 붙었다.

특히 이 병원 주변에서는 밤마다 전등이 켜진다는 이야기, 유령 간호사가 병동을 돌아다닌다는 설화가 지역 청소년들 사이에 전해지며 일종의 도시 전설이 되어왔다. 이로 인해 파라노마 병원은 단순 탐험지를 넘어, ‘험지’ 또는 ‘금지된 장소’로 인식되어왔으며, 몇몇 유튜버나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이곳을 촬영하면서 소문은 더욱 확산되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비공식적 이야기이며, 탐방자 대부분은 폐허에 남아 있는 흔적들, 벽에 적힌 오래된 문장들, 병원의 정적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실제 공포보다 더 강렬했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곳은 무섭다기보다 슬프다”**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파라노마 정신병원은 인간 정신의 역사와 맞닿아 있는 장소로 느껴지며, 단순히 공포로 소비되기보다는 진지한 접근이 필요한 장소다.

 

 

 

폐정신병원을 대하는 태도 – 유산과 윤리 사이의 균형

폐정신병원을 탐방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윤리적 경계에 대한 인식이다. 실제로 유럽 여러 국가에서는 과거의 정신병원 유산을 단순히 ‘으스스한 장소’로만 소비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환자의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던 시대, 비인도적 치료가 이루어졌던 장소들이 다수 있기 때문에, 그 폐허를 단순 ‘놀이터’로 삼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지우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파라노마 병원 역시 예외는 아니다. 루마니아 역사 속에서 정신질환자가 어떤 시선 속에 놓였는지, 공산정권 하에서 어떤 방식으로 통제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공간이다. 실제로 루마니아 보건 당국은 최근 들어 이러한 유산의 보존과 접근 방식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탐방자에게 비공식 침입이 아닌, 문화적 기록과 조사 차원의 접근을 유도하고 있다.

정신병원 폐허는 단순히 ‘무서운 장소’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가 병을 대하고 숨기던 방식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파라노마 병원 역시 그런 의미에서, 조용히 걷고, 느끼고, 남겨진 흔적을 성찰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것이 이 고딕 병원의 침묵을 존중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