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잊힌 터널의 입구를 찾아서
충북 제천시 외곽, 한적한 농로를 따라가다 보면 사람의 발길이 뜸해지는 지점에서 예상치 못한 구조물을 만나게 된다. 녹슨 철문과 이끼 낀 콘크리트 벽면, 좁고 어두운 입구가 마치 시간의 틈으로 연결된 듯한 폐터널.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광산 자원과 군수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건설된 제천 ○○터널이다. 공식 지도에서조차 이름 없이 존재하는 이 터널은, 방치된 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견고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주변에 안내판 하나 없이 그저 나무와 덤불 사이에 묻혀 있는 모습은, 이 터널이 역사에서조차 잊혀졌다는 사실을 더욱 강조한다. 접근을 위한 산길은 가파르고 잡목이 많지만, 그만큼 외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의 흔적 – 강제 동원과 터널 건설의 진실
제천 폐터널은 단순한 교통 시설이 아니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일대는 일제 강점기 중반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철광석과 석탄, 그리고 석회암을 실어 나르기 위한 광산 운송로의 일부로 활용되었다. 특히 이 터널은 일본군의 군수 자재를 신속히 이동시키기 위해 급히 뚫은 것으로, 시멘트보다는 돌과 벽돌을 섞은 복합 구조를 사용해 빠르게 시공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문제는 건설 과정에서 다수의 조선인 강제노역자들이 투입되었다는 사실이다. 생계형 모집이 아닌, 경찰권력을 동원한 동원방식이었으며, 안전장비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채 하루 10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을 강요당했다. 이 터널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식민지 수탈과 인권 유린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와 함께 비극적 기억을 간직한 장소라 할 수 있다.
폐허 속을 걷다 – 터널 내부에서 느낀 시간의 온도
터널 안은 한겨울에도 영상의 온도를 유지하는 등 일정한 습도와 온도가 감돈다. 표면은 이끼와 물때로 덮여 있으나, 몇몇 지점에는 시공 당시 새겨진 일본어 마킹과 날짜가 여전히 남아 있다. 탐방자 입장에서는 역사적 단서이자 일제의 흔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벽면에 새겨진 이름 모를 기호, 그리고 입구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어두워지는 공간은 단순한 ‘탐험’ 이상의 체험을 제공한다. 내부는 대체로 안정적이나, 일부 붕괴 조짐이 있는 구간도 관찰되므로 심화 진입은 권장되지 않는다. 조용한 플래시 불빛 아래에서 마주하는 오래된 곡선 구조는 과거의 공포와 동시에 경외심을 자아낸다. 과거의 인프라가 어떻게 현재에 ‘시간의 기록’으로 남는지를 실감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문화재냐, 위험 시설이냐 – 잊힌 터널의 운명
제천 폐터널은 현재 문화재로 등록되지도, 공식 폐기되지도 않은 상태다. 법적으로는 민간 소유지 또는 국유지로 추정되지만, 관리 주체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지역 사회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역사교육 현장으로 활용하거나 문화재로 보존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붕괴 위험성과 불법 출입 문제를 이유로 철거를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수년 전 몇몇 탐방객이 낙석 사고를 당할 뻔한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와 별개로, 현재 이 터널을 찾는 이들은 극소수의 사진가, 도시기록가, 그리고 지역 역사에 관심 있는 소규모 탐험자들뿐이다. 이들은 터널의 존재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한국 근대사 속 숨겨진 진실을 증언할 수 있는 현장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정식 개방이나 등록 이전이라도, 이 공간이 역사 안에서 어떤 위상을 지니는지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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