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의 조용한 풍경 – 그곳에 학교가 있었다
속초의 구 도심과 신도심이 교차하는 지점, 오래된 주택가와 어우러진 높은 나무 사이에 자리한 ○○초등학교는 외부에서 보면 그저 폐쇄된 공공건물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곳은 단순한 폐교가 아니다. 학생이 하나둘 줄어들며 점차 텅 비게 되었고, 마침내 정식 폐교 조치 없이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설 일부는 남아 있고, 지역주민 일부는 아직 ‘학교’로 기억한다. 지역 행정에서는 이 학교를 별도로 ‘폐교’로 분류하지 않았고, 어떤 용도로도 전환되지 않은 채 수년째 ‘공중에 붕 떠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 이처럼 공식적으로는 기능을 잃었지만, 물리적으로는 사라지지 않은 장소를 우리는 **유령학교(Ghost School)**라 부른다. 이는 속초라는 도시에 있어 묘한 이질감을 형성한다.
사라진 것은 학생만이 아니다 – 유령학교의 도시적 맥락
이 학교가 유령처럼 잊힌 것은 단순히 아이들이 떠났기 때문만이 아니다. 속초의 인구 구조 변화, 교육 수요의 급격한 감소, 학군 개편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속초 외곽 지역의 급속한 고령화와 주택 재개발 사업은 소규모 학교들을 점점 밀어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는 점차 신입생 수가 1~2명으로 줄었고, 결국 학급 수가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흥미로운 점은 행정적 폐쇄가 아닌, ‘운영 중지’라는 회색 지대 속에서 학교가 놓여졌다는 것이다. 건물은 여전히 있다. 교정도 있고, 철제 울타리도 있지만, 교사가 없고 아이들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문을 열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사실은, 이곳이 영원히 기억 속에만 남을 장소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외로운 공간, 마주한 풍경 – 내부에 흐르는 멈춘 시간
탐방은 조심스럽게 외부에서 시작된다. 학교 정문은 녹슨 자물쇠로 잠겨 있었지만, 담장 너머로 교정과 건물의 일부가 관찰 가능했다. 운동장에는 오래된 축구 골대가 여전히 서 있었고, 창문 너머 교실에는 책상 몇 개가 엉성하게 쌓여 있다. 놀라운 점은, 이 학교의 내부 일부는 여전히 정돈된 상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칠판 위에는 ‘졸업을 축하합니다’라는 글귀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급식소에는 쓰지 않은 식판이 놓여 있었다. 마치 마지막 수업이 끝난 후 누구도 들어오지 않은 듯한 정적이 감돈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첫 학교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학창시절의 기억이었다. 폐허라기보다는 ‘정지된 장소’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만큼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방치인가 보존인가 – 유령학교를 대하는 두 시선
속초 ○○초등학교와 같은 유령학교는 지역 사회에서 여러 시선을 동시에 받는다. 일부 주민은 "무섭고 흉물스럽다"며 철거를 요구하지만, 다른 이들은 "지역의 추억이자 자산"이라며 보존을 원한다. 문제는 이 두 시선을 조율할 법적·행정적 틀이나 의지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예산과 활용 방안, 소유권 문제 등으로 인해 방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사이 학교는 점점 더 황폐해진다. 한편, 일부 예술가나 도시기록가들은 이 유령학교를 ‘살아있는 폐허’로 보고 기록을 남기기도 한다. 낡은 교과서, 고장 난 시계, 지워지지 않은 낙서 하나하나가 그 시대 아이들의 흔적을 보여주는 문화 자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유령학교는 단순한 ‘폐쇄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무관심 속에 잊혀지는 기억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곳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적 논의와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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