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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강원도 정선, 폐허가 된 탄광촌에서 만난 삶

| 정선 탄광촌의 부흥기와 쇠락의 흔적

강원도 정선은 한때 국내 최대의 석탄 산지로 손꼽히던 지역이었다. 특히 1970~80년대에는 수많은 광부들이 몰려들며 정선은 ‘검은 황금’이라 불리는 석탄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당시 마을 전체가 탄광의 리듬에 따라 움직였고, 매연과 땀으로 얼룩진 골목은 살아 있는 산업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시행된 1989년 이후, 국내 대부분의 광산은 문을 닫았다. 정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채산성이 낮은 광산부터 폐광되었고, 주민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몇몇 마을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대부분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황폐한 골조와 먼지 쌓인 시간만이 남아 있다.

 

강원도 정선, 폐허가 된 탄광촌에서 만난 삶

 

 

| 버려진 집과 광산, 그 안의 잔향들

정선 폐광촌을 거닐다 보면, 벽이 허물어진 가옥과 문이 굳게 잠긴 공동주택, 무너진 광산 입구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일부 집은 가구가 그대로 남아 있어, 누군가 갑자기 자리를 뜬 듯한 인상을 준다. 벽에 걸린 옛 가족사진, 종이 벽장 안에 놓인 오래된 교과서, 식탁 위 녹슨 식기 등은 한 가정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광산 입구에는 녹슨 카트레일과 무너져내린 채탄 통로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위를 덮은 덤프트럭 타이어 자국과, 옛날 광부들의 이름이 새겨진 사물함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누군가는 이곳을 "삶이 통째로 유실된 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현장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 마을에 남겨진 사람들과 기억

폐허가 된 탄광촌이라 해도, 정선에는 아직 몇몇 주민들이 남아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 고령의 노인들이며, 떠나간 가족을 기다리거나 끝까지 집을 지키고자 남은 이들이다. 이들은 여전히 광부였던 남편, 형제, 이웃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다.

한 마을 어르신은 “그때는 힘들었지만, 사람 냄새 나는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광산에서는 생명이 오가는 사고가 많았고, 가족 중 누군가가 채탄 중 다치거나 실종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선의 탄광촌은 단순한 노동현장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이제 그 기억은 녹슨 철문과 허물어진 집터 속에 숨어 있지만, 마을 주민들의 증언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 영화·다큐로 되살아나는 정선의 기억

최근 들어 정선의 탄광촌은 영화나 다큐멘터리, 사진전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특히 폐허가 된 마을과 광산,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프로젝트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큐멘터리 <검은 땀의 기억>은 실제 정선 폐광촌에서 촬영되었으며, 퇴직한 광부들의 일상과 과거를 생생히 기록했다. 또한 사진작가 정철훈의 시리즈 ‘침묵의 굴’은 광산 내부와 인근 마을의 변화를 정적인 이미지로 담아내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정선은 산업 유산을 단순히 ‘과거의 잔해’로 소비하지 않고, 그것을 매개로 한 문화적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폐허는 무너졌지만, 그 위에서 예술과 기록의 언어가 새로이 피어나는 중이다.

강원도 정선, 폐허가 된 탄광촌에서 만난 삶

 

 

| 탄광촌 탐방 가이드 – 안전과 예의의 균형

정선의 폐광촌을 방문하고자 한다면, 몇 가지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다. 우선, 광산 구조물은 시간이 흐르며 대부분 붕괴 위험이 높아졌기 때문에 직접 진입해서는 안 된다. 외형만 촬영하더라도 멀찍이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하며, 헬멧과 안전화 착용이 필수다.

또한 일부 마을은 아직 거주자가 있으므로, 사진 촬영이나 소음 발생에 있어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특히 장비를 사용한 촬영은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하며, 마을 진입 전에는 지자체나 마을 이장과의 간단한 허락 절차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탄광촌은 때로 노숙자, 야생동물(특히 멧돼지), 독성 곰팡이 등이 잠재해 있는 장소이기도 하므로 혼자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반드시 2인 이상 팀을 이루고, 휴대폰 GPS 및 지도 앱, 손전등, 구급약 등을 준비해 가는 것이 안전하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현장에 남겨진 역사와 사람들의 기억을 존중하는 태도가 폐광촌 탐방의 기본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