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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경기 남양주 폐기된 탱크 공장 내부 탐방기 – 철의 유산과 침묵의 기록

1. 철문을 지나, 탱크가 사라진 자리

남양주 외곽, 도시와 산의 경계선에서 우연히 만난 오래된 공장. 외형은 마치 수십 년 전 그대로 시간에서 멈춰선 듯했고, 거대한 철제 문은 녹이 슬어 스스로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이곳은 한때 군수 관련 중장비를 제작하던 소형 탱크 공장으로, 국방 산업과 관련된 비공개 공간이었다는 소문이 오래전부터 돌고 있었다.
입구를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벽면에는 퇴색된 ‘안전 제일’ 슬로건이 붙어 있고, 천장엔 낡은 크레인 레일이 녹슨 채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바닥에는 오래된 윤활유 자국, 한쪽 구석엔 설계도가 흩어진 작업대, 그리고 텅 빈 제작 라인이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었다.

이 공장은 1980년대 후반 국방 예산 확대의 일환으로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냉전의 그림자 아래 군사 장비 개발은 활발히 진행되었고, 특히 자주포나 소형 전술 차량 제작을 위한 부품 공장이 수도권 외곽에 다수 분포했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민간 이전이 본격화되면서 이러한 군수 공장도 서서히 폐쇄되거나 민간 산업으로 전환되었다. 남양주의 이 공장도 그러한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경기 남양주 폐기된 탱크 공장 내부 탐방기 – 철의 유산과 침묵의 기록


2. 공장의 구조와 유산이 남긴 흔적

탱크를 생산하던 이 공장은 단층 구조의 대형 조립식 건물로, 내부는 용접 구역, 조립 라인, 부품 창고, 시험실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창문은 대부분 막혀 있었고, 내부는 자연광보다는 기계식 조명과 송풍 장치에 의존했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당시 공장 노동자들은 일부 지역에 숙소를 마련하고 집단생활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 즉, 이곳은 단순한 제조시설이 아니라 하나의 ‘군산 복합체’였던 셈이다. 폐허 상태지만 현장에 남겨진 작업 매뉴얼, 표식들, 그리고 테스트 베드의 흔적은 이 공장이 한때 고도의 기술력과 체계적 공정을 갖춘 군사 시설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가장 인상 깊은 곳은 공장 한쪽 벽면에 남아 있는 시험 기록 표다. 날짜별로 성능 시험, 내구성 테스트, 장착 속도 등을 꼼꼼히 기입한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는 단순 조립이 아니라 실제 군사 장비의 핵심 부품을 만들던 곳임을 암시한다. 또한, 시험 벽 맞은편에는 ‘비상 상황 시 대피 경로’가 적힌 간이 안내문이 아직도 붙어 있었다. 이런 사소한 기록들은 전시 산업 시설이 지닌 특수성과 긴박했던 시대 상황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3. 철거되지 못한 폐허의 이유

이 공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생산을 중단했고, 이후로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다른 폐산업 단지와 달리 전혀 개발되지 않고 오랫동안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배경에는 몇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 공장이 위치한 지역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일부와 겹치며, 주변 환경보전 지역과 맞닿아 있어 재개발에 법적 제한이 많다. 둘째, 이 공장이 과거 국방부 산하 하청 계약을 통해 운영되었기 때문에 부지의 소유권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지역 사회 내부에서도 이 공간의 역사성을 일부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존재해 섣부른 철거에 대한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실제로 몇몇 도시 탐방가들은 이 장소를 ‘폐허 아카이브’로 촬영하고 기록하며, 산업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지금도 이 공장에 들어서면 무언가 작업이 멈춘 직후의 정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기계는 멈췄지만, 공기 속엔 여전히 금속 냄새가 남아 있고, 중장비가 움직이던 흔적은 벽과 바닥 위에 선명히 남아 있다. 마치 누군가가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 같은, 시간이 멈춘 공간이 이곳이다.


 

4. 폐산업 공간의 재해석: 다큐멘터리의 현장으로

이처럼 기능을 잃은 산업 공간은 단순한 방치의 결과물만은 아니다. 남양주의 폐탱크 공장은 시각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활용 가능한 원형 공간이다. 최근 이곳을 배경으로 한 독립 다큐멘터리가 기획되었고, VR 기반 전시회에 이 공장의 구조와 잔해를 3D로 구현한 사례도 있었다.

즉, 폐허는 단순히 죽은 공간이 아니라, 창작의 무대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무수한 선형 구조물, 빛이 닿지 않는 구석, 기계가 남긴 흔적들까지도 하나의 미장센이 된다. 실제로 사진 작가, 영상 감독, 예술가들에게 이러한 장소는 새로운 감각을 실험할 수 있는 중요한 피사체다.

뿐만 아니라, 지역 교육기관에서는 이 공장을 산업유산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억을 담은 장소를 지워버리지 않고, 기록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자”**는 논의다. 이는 폐허를 바라보는 관점이 단순한 철거나 재개발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도시 아카이브의 일부로 전환되고 있다는 흐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