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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폐허가 된 성북구 ○○병원, 그 안에서 마주한 것들 – 침묵 속 잊힌 인간의 흔적

| 병원이라는 공간의 이면 – 폐허가 된 이유

서울 성북구의 조용한 언덕 중턱, 빽빽한 주택가를 지나 도달한 폐허의 중심에는 한때 주민들의 생명을 책임졌던 중형 병원이 놓여 있다. 외관만 보면 다소 단정한 구조물일 뿐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유리창 대부분이 깨져 있고, 철제 출입문은 녹슬어 조금만 건드려도 소리가 요란하다. 이곳은 1990년대까지 운영되던 개인 병원으로, 소아과·내과·정신과 등 다양한 진료 과목을 갖춘 종합병원에 가까운 구조였지만, 여러 사정으로 폐쇄되었다.

폐쇄의 원인은 명확하게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내부 관계자의 인터뷰와 지역 기사에 따르면 병원의 부채, 불투명한 운영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과 병동에서의 환자 관리 문제로 인해 민원이 지속되었고 결국 행정 폐쇄 조치가 내려졌다고 한다. 이후 소유권 분쟁이 수년간 이어지며 병원 건물은 방치되었고, 현재는 출입금지 표지판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의료시설이던 장소가 폐허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곳은 단순한 유휴공간 그 이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폐허가 된 성북구 ○○병원, 그 안에서 마주한 것들 – 침묵 속 잊힌 인간의 흔적


| 내부 구조 탐방 – 침묵의 복도와 잊힌 기록들

건물 내부는 오래된 곰팡이 냄새와 의약품 잔재의 화학적 기운이 공기 중에 혼재되어 있다. 1층 로비는 여전히 접수 창구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기 의자와 번호표 기계도 부서진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병원의 핵심 공간인 진료실과 수술실은 대부분이 문이 열린 채였고, 몇몇 공간은 반쯤 무너진 천장과 벽지가 벗겨진 채로 폐허 특유의 무게감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정신과 병동은 복도가 길게 이어지는 구조였으며, 방마다 환기창이 작고 잠금장치가 내부에서 열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벽에는 낙서가 가득했고, 날짜가 지워진 약 봉투나 환자차트가 일부 남아 있었다. 이 병동을 지나며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철제 침대 프레임과 제자리에 놓인 약병들, 그리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은은한 빛이었다. 모든 것이 중단된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은, 이 공간에서의 삶이 갑작스레 끊겼음을 암시한다.

 


 

 

| 병원이 남긴 사회적 흔적 – 의료와 기억의 균열

폐허가 된 병원은 단지 건물 하나의 쇠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역 사회와 의료 시스템의 불완전한 연결고리를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성북구는 비교적 노년 인구 비율이 높은 편이며, 지역 내 공공 의료 인프라가 과거부터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이 병원이 폐쇄된 이후 주민들은 인근 대형 병원으로 이동해야 했고, 이는 응급 환자 발생 시 대처 시간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주민 인터뷰가 남아 있다.

또한, 정신과 병동의 기록은 우리 사회가 정신건강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왔는지에 대한 민낯을 보여준다. 치료가 아닌 관리, 회복이 아닌 격리의 공간으로서 기능했던 병동은 환자 인권의 사각지대를 상징하는 장소로도 읽힐 수 있다. 실제로 이 병원이 운영되던 당시에는 정신보건법 개정 전이었으며, 보호자에 의한 강제입원 제도가 일반화되어 있었다. 병원의 폐허는 물리적 공간의 붕괴이기도 하지만, 의료 행위와 사회적 책임의 균열이 드러나는 상징물로 기능한다.

 

 


| 도시 속 폐허의 문화적 가능성 – 폐병원, 기억의 극장으로

폐허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점차 문화와 예술의 언어로 확장되고 있다. 성북구의 이 폐병원도 단순한 철거 대상으로 여겨지기보다는, 기억의 장소로 보존하고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일례로, 폐허 상태의 공간을 무대로 한 연극, 사진 전시, 다큐멘터리 촬영이 시도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병원 구조 자체를 활용한 VR 체험 콘텐츠 개발 제안도 있었다.

이는 단지 병원의 유령 같은 분위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이 지닌 역사성과 인간적 흔적을 되짚는 작업이다. 의료 공간은 그 자체로 수많은 생과 사, 회복과 상처의 기억을 품고 있다. 따라서 폐허가 된 병원이 단지 공포나 낭만의 공간이 아닌,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과 기록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 활용은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

성북구의 이 폐병원은 아직 철거되지 않은 채 도심의 조용한 언덕 위에 남아 있다. 철문을 닫은 병원이 다시 문을 여는 날이 올지는 미지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 흔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언젠가 새로운 의미로 재조명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