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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서울 도심 속 폐허, 낙산성곽 아래 숨겨진 병원

1. 폐허의 입구, 성곽 아래 침묵의 공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성곽길을 따라 낙산공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도시의 생동감은 어느 순간 잠잠해진다. 낙산성곽 아래, 수풀 사이로 감춰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정체불명의 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낡고 금이 간 시멘트 외벽, 닫히지 않은 철문, 그리고 멀리서도 풍기는 곰팡이 냄새. 이곳은 한때 병원이었던 폐건물로, 지금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은밀하게 방치된 폐허로 남아 있다.

이 병원의 정확한 이름은 오래전 철거 기록과 함께 잊혔지만, 인근 주민들은 여전히 "산 밑 병원" 혹은 "폐정신과"로 부른다. 몇몇 도시탐험가(Urbexer)들의 SNS를 통해 전해지는 내부 사진은, 낙후된 병상, 뒤틀린 휠체어, 벽에 걸린 낡은 차트 등이 그대로 방치된 현실을 보여준다. 서울이라는 초현대 도시에서 이토록 강렬한 시간의 단절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흔치 않다.

이곳이 단순히 폐건물이라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아무도 이 병원의 존재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자체나 구청 홈페이지 어디에도 이 병원의 정보는 남아 있지 않으며, 문화재청이나 건축 관련 자료에서도 빠져 있다. 낙산성곽이 관광자원으로서 조명을 받을 때조차, 바로 아래 이 병원은 철저히 그림자 속에 묻혀 있었다.

 


2. 병원의 유산, 도심 의료시설의 잔상

이 건물은 1970년대 후반 정신과 병원으로 시작해, 이후 요양병원 형태로 바뀌었다가 2000년대 초반 결국 운영을 중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서울은 강북 일대를 중심으로 수많은 민간병원들이 생겨났으며, 의료시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 결과 일부 병원은 운영난에 시달렸다. 낙산 아래 병원도 그러한 시대적 흐름의 일환이었다.

서울의 오래된 병원들은 대부분 재건축되거나 재개발 대상이 되었지만, 이 병원은 여러 이유로 방치되었다. 건물이 문화재 보호 구역 경계에 걸쳐 있었고, 부지 소유권 문제가 얽혀 있어 개발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병원은 **‘잊힌 의료시설’**로 전락했고, 지금은 일부 노숙자나 유튜버, 호기심 많은 탐험가들의 출입 장소가 되고 있다.

실내를 살펴보면, 병상이나 수납장, 진료기록은 물론 일부 의약품 패키지까지 남아 있는 곳도 있다. 병원 특유의 장식되지 않은 조명, 하얀 벽, 그리고 텅 빈 진료실은 오히려 더 섬뜩한 느낌을 자아낸다. 어딘가에 환자들의 기록이, 혹은 당시 의료진의 흔적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 공간은, 도시의료의 과거가 현실과 겹치는 장소로 남아 있다.

 

서울 도심 속 폐허, 낙산성곽 아래 숨겨진 병원

 

3. 도시의 균열과 공간의 소외

서울은 ‘멈추지 않는 도시’라는 말처럼 끊임없이 확장하고 발전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런 변화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버려진 장소’를 만들어낸다. 이 병원은 바로 그런 도시의 그림자다.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서울이라는 도시의 결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폐허가 된 병원 건물은 단지 노후한 시설이 아니라, 관리의 사각지대, 행정의 무관심, 공공정책의 공백을 상징한다. 이처럼 버려진 공간은 도시의 계획 속에서 예외처럼 존재하며, 결과적으로 사회적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사회적 인디케이터로 기능한다.

특히 정신과 병원이었던 이 장소는, 과거 한국 사회가 정신질환자나 고령 환자에게 어떤 식의 의료적·사회적 대우를 했는지까지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환자들은 때로는 자발적으로, 때로는 타의에 의해 이곳에 머물렀고, 지금은 그 흔적마저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공간을 통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이 병원이야말로 도심이 스스로 지워버린 기억의 조각이다.

 


4. 도심 폐허를 기록하는 일의 의미

기존의 폐허 탐방은 주로 장소의 낭만성이나 미스터리함을 강조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이 병원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 그 이상의 사회적 의미다.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공간을 “쓸모없음”이라는 기준으로 방치해왔는가.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이 그러한 공간에서 잊혀졌는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심 폐허를 기록하는 행위는 단순한 탐험이나 취미가 아니라, 도시사적 실천이자 문화적 보존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방치된 병원을 포함한 다양한 폐허를 문화자산으로 등록하거나, 예술의 장으로 변모시키는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도시는 끊임없이 과거를 밀어내며 현재를 확장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록되지 않은 공간은 역사에서도 소외된다.

이 병원처럼 잊혀진 장소들을 아카이브화하고, 실제로 존재했던 시설로서의 의미를 복원하는 일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사회적 복원이다. 기록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지금 우리가 폐허를 걷고 글을 쓰고 기록을 남기는 일은, 도시의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작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