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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폐허 탐방

대구 ○○고등학교 폐교 부지의 그림자 – 방치된 기억의 복도

1. 낡은 복도와 교실, 그 안에 남은 시간의 층위

대구 도심 외곽에 위치한 ○○고등학교는 한때 지역에서 명문으로 불리던 전통 있는 학교였다. 교복을 단정히 입은 학생들이 운동장을 가득 메우고, 종소리에 맞춰 복도를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학령인구 감소와 도시개발 축의 이동은 이 학교를 차츰 주변부로 밀어냈고, 결국 폐교라는 결정을 피할 수 없었다.

폐교 이후 수년이 지난 지금, ○○고의 교정은 고요하다. 담쟁이 넝쿨이 벽을 타고 올라가고, 깨진 유리창 너머로 먼지가 가득 쌓인 교실이 보인다. 체육관의 바닥은 틀어졌고, 급식실에는 식판이 몇 개 뒤엉켜 있다. 이 학교는 단순히 비어 있는 건물이 아니다. 그 자체로 과거를 담고 있는 기억의 층위이며, 도시의 한 시절이 응축된 장소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침묵이다. 이곳의 복도는 더 이상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를 담지 않지만, 벽에 붙어 있는 ‘학급 목표’나 칠판에 적힌 문구는 여전히 시간을 거슬러 방문자를 맞이한다. 이 낡은 공간은 대구라는 도시가 겪어온 인구 구조의 변화, 교육 정책의 굴절, 그리고 도시 재개발의 흐름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2. 폐교가 던지는 도시의 질문들

폐교는 단지 하나의 학교가 문을 닫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 사회의 인구 이동, 경제 구조, 행정 판단, 교육 철학 등이 뒤엉킨 결과물이다. 대구 ○○고등학교의 폐교는 단지 학생 수가 줄었다는 이유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 배경에는 도심 공동화, 개발 불균형, 청소년 유출 현상이라는 복합적인 도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대구는 과거 산업도시로서 빠르게 성장했지만, 지금은 인구 정체와 고령화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외곽 주거지에서 중심지로 학생들이 유입되지 않으면서, 구도심 내 학교들이 줄줄이 폐교되고 있다. 이 학교 역시 그러한 흐름 속에서 희생된 사례였다.

이처럼 폐교는 도시의 구조적 병목을 드러내는 사회적 신호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사라진 학교’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방치된 건물 뒤편에는, 제때 대처하지 못한 행정의 무능과, 지역사회가 교육을 어떻게 대우해왔는가에 대한 질문이 함께 놓여 있다. 이 학교는 하나의 사회적 증거물이다.

 

대구 ○○고등학교 폐교 부지의 그림자 – 방치된 기억의 복도

 

3. 방치된 장소의 문화적 가능성

대구 ○○고등학교는 현재 어떤 공식 용도도 없이 방치되어 있다. 일부 시민단체나 지역 예술가들은 이 폐교지를 청소년 문화센터나 지역 아카이브 센터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지만, 실현된 사례는 없다. 부동산 개발 논리와 예산 문제, 법적 절차 등의 복잡한 문제가 얽히면서 결국 이 공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곳'**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재생한 성공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한양도성 역사관’, 충북의 ‘진천 한지체험관’, 강릉의 ‘뮤지엄 아르떼’ 등은 모두 폐교를 재구성한 사례다. 폐교는 도시의 버려진 조각이 아니라, 새롭게 스토리를 입힐 수 있는 여백이다.

○○고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 공간을 청소년의 예술 실험장, 지역 역사 전시관, 공공 협업 워크숍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다면, 사라졌던 의미가 되살아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이며, 장소의 역사성을 보존하면서도 미래적 용도를 담아낼 수 있는 기획력이다.

 


 

4. 학교와 지역 정체성: 소속감의 상실과 재건

우리는 종종 학교를 단순한 교육기관으로만 생각하지만, 그 공간은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거점이기도 하다. 대구 ○○고등학교는 수십 년간 이 지역 청소년들의 성장터였고, 주민들 사이에서는 공동체적 소속감을 형성하는 중심지였다. 졸업생들 간의 연대, 동창회의 존재, 지역 축제 참여 등 학교는 교육의 장을 넘어 사회적 결속의 핵심 공간으로 작동해왔다.

폐교 이후, 이 지역은 정체성을 잃었다. ○○고 출신 주민들은 자신들의 청소년기를 함께한 공간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아쉬움을 넘어 단절감을 호소하고 있다.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고, 인근 상가가 리모델링되어도, 그곳에 ‘우리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이제 학교라는 공간은 단순한 학습장이 아닌, 공동체 기억의 그릇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도시가 쇠퇴하고 사람들이 떠날 때, 기억을 간직한 공간조차 없어진다면, 남는 것은 무감각한 건축물뿐이다. 대구 ○○고등학교는 그 경계에 서 있다.
이 학교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단지 건물 하나가 아니라, 지역이 지닌 정체성과 공동체성이 함께 사라지는 일이다.